“사설펀드에 한국금융의 미래를 맡길 수는 없다.”(금융당국)
자본 확충에 혈안이 된 은행권과 금융당국간에 논쟁이 일고 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된다’(흑묘백묘론)는 은행권에 대해 당국이 제동을 걸고 나선 것.
당국이 자본유치 대상을 외국 ‘유수’의 금융기관으로 못박은데 대해 은행 관계자들은 “유명하지 않더라도 활용하기 나름”이라며 ‘탁상행정의 표본‘이라는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증자계획 공개 무책임"…'대주주' 정부 은행 비난▼
▽펀드자본 유치는 부실은행이나 가능〓논쟁은 조흥은행이 15일 의욕적인 자본확충 계획을 밝히면서 불거졌다. 미국 투자펀드인 서버러스와 함께 자산유동화 회사를 설립한 뒤 ‘정부의 승인을 거쳐’ 서버러스측이 5억달러를 출자, 은행지분 14%를 갖는다는 내용.
이 계획은 그러나 16일 오전 금융감독원이 “은행법 시행령상 문제가 있다”고 제동을 걸면서 위기를 맞았다. 시행령은 5조2항에 ‘재무구조가 우수하고 국제적 신인도가 높은 유수의 외국 금융기관’에 한해 동일인 소유지분 한도 4%를 초과할 수 있도록 규정하는 한편 8조2항에 ‘부실금융기관 정리 등 특별한 사유가 있을 경우’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
금감위 관계자는 “대주주가 정부(예금보험공사·80%)인데 은행측이 무책임하게 증자계획을 공개할 수 있느냐”고 비난했다.
그러나 조흥은행은 “금감원 은행감독국 및 금감위측과 접촉,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98년 한차례 적기시정조치를 받은 만큼 특별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반박했다. 금감원측은 “조흥은행은 현재 경영정상화계획을 이행중”이라고 강조하면서 “부실채권 해소 후 꼭 증자가 필요한지 재검토해봐야 한다”는 원론적 입장을 되풀이.
▼단기매각불허 옵션활용 부작용 최소화 할수도▼
▽정부의 논리와 반론〓조흥은행에 앞서 한미은행도 칼라일이라는 사설 펀드자본을 유치하려다 금감원의 반대에 부닥쳤다. 반면 제일은행은 부실은행으로 지정돼 뉴브리지펀드 자본을 유치할 수 있었다.
당국이 사설펀드에 대해 부정적인 이유는 이들의 금융 노하우를 신뢰할 수 없고 기본적으로 단기투자 행태를 보이는데다 기업정보 유출도 우려된다는 점 때문. 따라서 은행 부실이 심화돼 적당한 금융기관을 찾기 어려울 때나 펀드자본을 인정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은행 관계자들은 정부가 아직도 ‘유명 금융기관이 최고’라는 환상에 젖어있다고 불만이다.
A은행 관계자는 “펀드자본을 들여오더라도 단기 지분매각을 불허하고 각종 옵션을 붙이면 부작용은 나타나지 않는다”며 “금융당국이 규정을 핑계삼아 감독권을 놓지 않으려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또다른 은행 관계자도 “외국자본의 행태를 규제하는 쪽으로 시행령을 고쳐야 한다”며 “제일은행 매각사례에서 보듯 부실이 커진 뒤 펀드에 지분을 넘기려면 엄청난 양보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래정·신치영기자> 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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