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DIgital]사이버테러 수백만 피해에도 익명성 처벌 어려워

  • 입력 2000년 5월 17일 19시 34분


‘범인〓필리피노, 범행도구〓컴퓨터와 인터넷, 피해자〓세계 네티즌 수백만명, 피해액〓70억 달러(추산), 수사주체〓필리핀경찰, 수사지휘자〓미국 FBI와 전세계 정보기관’

최근 전세계 네티즌들을 공포에 떨게 만든 ‘러브 바이러스’ 사건의 면면은 국경 없는 ‘사이버 테러’의 피해가 얼마나 심각한 지 그 전형을 보여 주고 있다.

‘사이버 테러’는 최첨단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해 사회 중추신경인 전산망을 파괴하거나 해킹으로 획득한 비밀정보를 불순한 목적에 이용하는 행위. 해킹과 크래킹, 바이러스 유포가 대표적인 유형이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조병인(趙炳仁)연구위원은 17일 “전세계가 사이버 네트워크로 묶여 감에 따라 요인암살이나 건물 파괴 등 과거 ‘아날로그’ 테러보다 사이버 테러의 위험이 더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범죄자의 익명성’과 ‘국경 없는 범죄’라는 사이버 테러의 특징은 범인 검거와 형사처벌을 어렵게 하는 가장 큰 원인이다.

러브 바이러스는 필리핀인이 자국 내에서 범죄를 저지른 경우지만 범인은 A나라 사람이고 컴퓨터가 있는 범행장소는 B나라, 인터넷 서버가 있는 곳은 C나라, 피해자는 ‘전지구인’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

이 때문에 선진국들은 사이버 테러에 대한 국제 공조방안을 활발하게 논의하고 있다. 주요선진8개국(G8) 법무장관은 97년부터 수차례 회의를 갖고 ‘하이테크 범죄’에 대한 ‘국가간 공권력의 공유’를 선언했다. 이들은 15일부터 프랑스에서 ‘G8 사이버범죄대책회의’를 열고 실무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국경없는 조직적 범죄에 대해 모든 국가들이 ‘핫라인’을 설치해 24시간 긴밀히 대처하고 범죄 정보가 되는 전자자료를 즉시 공유한다는 것이 회의의 골자.

사이버 테러는 피해자가 민사상의 손해배상을 받을 가능성이 희박한 것도 문제다. 범인이 밝혀지면 범죄가 발생한 관할 법원에 소송을 낼 수 있으나 전세계적으로 천문학적인 규모의 피해가 발생하고 대부분의 범인들은 돈이 없는 젊은이들이기 때문.

컴퓨터범죄 전문가인 이광형(李光珩)검사는 “네티즌 스스로가 평소 보안에 투자하고 중요한 자료는 백업해 피해를 사전에 방지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정보화시대의 사이버 테러는 대중교통시대의 교통사고와 같다”는 논리에서 사이버 테러에 대비한 ‘보험’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인터넷 해킹은 ‘정보통신망 보호조치 침해 및 훼손죄’로, 바이러스 유포 행위는 형법상 컴퓨터 사용자에 대한 ‘업무방해죄’로 처벌하도록 하고 수사는 경찰과 검찰이, 국가기관에 대한 사이버 테러는 국가정보원이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ISP)들이 이용자의 인터넷 접속기록을 보존하는 것이 의무화돼 있지 않고 수사기관의 추적 능력과 인원이 질과 양의 두 측면에서 모두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대검 관계자는 “자칫 한국이 사이버 테러리스트들의 온상이 될 수 있다”며 “조속히 수사 및 정보수집 능력을 강화하고 선진국의 국제공조 논의에도 동참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석호기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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