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따라잡기]증시 불안의 원인은 정책혼선

  • 입력 2000년 5월 18일 15시 42분


증시가 사회문제로 비화될 정도로 심각한 공황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개인투자자들이 95%를 차지하고 있는 코스닥시장의 경우 대형주들이 대부분 하한가를 기록하면서 주가지수가 바닥을 모른채 추락하고 있다. 실적이 뒷받침되는 기술주로 평가받던 대형주들까지 1/4분기에 이익을 내지 못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첨단기술주의 성장성에 대한 믿음까지 흔들리고 있다.

이에따라 개인투자자들의 손실규모가 투자액의 1/2에서 많게는 90%에 달하는 종목까지 나타나면서 사회적 불안으로 이어질 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거래소도 투신, 증권등 기관투자가들이 허약한 체력으로 힘겹게 장을 떠받치고 있으나 얼마나 버틸지 낙관할 수 없는 형편이다.

외국인들도 아직까지 한국 시장에 대해 신뢰를 버리지않고 낙폭이 큰 우량은행주를 매수, 지수 낙폭을 줄이는데 한 몫하고 있지만 언제 마음을 돌릴지 안심할 수 없는 처지이다.

시장이 휘청거리는 원인으로는 동남아시장의 불안, 매수세력 부재, 금융 구조조정의 불안 등 많은 것이 꼽히고 있다.

하지만 시장 참여자들은 증시 불안의 가장 큰 요인으로 금융 구조조정등 경제 정책에 대한 정부의 무원칙과 혼선을 꼽는다.

국내외 경제 상황은 지난97년 외환 위기를 초래할 때와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는데 정부는 속절없이 IMF의 우산 속으로 들어간 당시와 마찬가지로 부처간에 불협화음만 내면서 제대로 대처를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불신의 대상이 되는 첫째 문제는 구조조정에 들어가는 공적자금 확보 문제이다. 투신권과 서울보증보험등에 당장 필요한 자금만 20조원이상이라면서 막상 자금의 확보 방안을 보면 정부 보증채 발행등 정공법은 외면한 채 기존에 지원된 공적자금의 회수등을 내놓고 있다. 이에따라 투신권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시기도 9월에나 완료되는 것으로 계획돼 있고 그나마 은행 구조조정에 필요한 자금등은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정부는 공적자금의 조성에 별 문제가 없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시장에서는 조성방법이 비현실적인데 과연 투신권 구조조정이 이루어질 수 있겠느냐고 묻고 있다. 그 결과가 최근 증시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은행 구조조정의 경우도 우량은행간의 합병이 우선적으로 이루어지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겠다던 방침이 그동안의 기조였는데 정부 일각에서 우량은행과 부실은행간 합병론이 나오면서 우량은행마저 투자 대상에서 제외되는 현상을 야기하고 있다. 우량-불량 은행간 합병에는 공적자금 투입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이에 필요한 자금은 앞에서 밝힌대로 어디서 조달할 지 막막하고 합병은행의 자본감소도 필연적인 수순으로 예상되며 합병에 따른 여파로 기업들의 신용 경색까지 우려된다는 것이다.

또 오는7월부터 실시되는 채권시가평가제가 한달여밖에 남지 않았음에도 정부가 아직까지 구체적인 시행방안을 내놓지 않은채 정부의 고위당국자가 나서서 오히려 이제도의 시행에 따른 불안 심리를 조장하는 발언을 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채권시가평가제가 경제에 필수 불가결하다면 빨리 시행방안을 내놓고 이에 대한 홍보를 제대로 해 일반 투자자들이 공연한 불안감을 갖는 것을 막아야 할텐데 정부는 이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처럼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안들에 대해 청와대, 재정경제부, 금융감독위원회등 경제부처마다 제각기 다른 목소리를 내자 시장에서는 과연 정부의 경제정책을 일관성있게 추진하는 콘트롤 타워가 존재하느냐 하는 원론적인 문제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 97년 외환위기를 초래한 단초가 기아사태에 대한 정부의 무원칙하고 질질 끄는 대처에 있었음을 알고 있는 시장 참여자들은 그래서 이제 증시는 물론 국내 경제가 안정을 회복할 수 있을지 여부는 정부의 처방 강도에 달려있다고 말한다. 정부의 일거수 일투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이 이같은 이유이다.

증권사 관계자는 "외국인투자자들의 주식 거래 동향을 보면 그래도 여전히 한국시장에 대해 믿음을 견지하고 있다고 보이고 증시도 700선이 어렵게 지켜지고 있어 아직 시장의 분위기를 회복할 여지는 충분히 있지만 증시에서 드러나고 있는 위기의 씨앗을 잘라버리기 위해서는 정부가 실현가능성 있고 시장에서 수긍할 수 있는 청사진을 시급히 밝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국내경제의 흐름을 보면 펀더멘탈이 튼튼하다고 강조하다가 결국 IMF체제를 맞은 지난97년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일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선 시장 일부에서 일고있는 기업들의 자금 악화설이 현실화될 경우 신용 경색이 확산될 우려가 높다. 정부는 하반기에도 저금리 기조가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고 기업들의 설비투자가 재개되려 하는 마당에 한두 기업이 휘청거리면 은행들의 자금 회수 회오리가 불수도 있기 때문이다.

합병등 구조조정을 앞둔 은행들이 자신이 살기위해 부실 징후가 보이는 기업의 자금을 조기에 회수할 가능성은 매우 높아졌다.

인도네시아등 동남아의 환율 급등등 금융위험도 아직은 우리에게 별 영향을 안주는 미풍에 머물고 있으나 우리의 체력이 약화될 경우 언제 국내에도 현실화될 지 모른다. 지난97년 경제 위기때도 동남아에서 시작된 외환 위기가 자생력을 갖춘 홍콩이나 대만은 비껴간 채 우리나라에 닥쳤음을 기억하는 시장 참가자들은 벌써 그 악몽을 떠올리고 있다. 경제전문가들은 일단 위기가 현실화되어 외국인들이 탈출하면 8백억달러가 넘는 외환보유고도 대단한 규모가 아니라고 지적하고 있다.

17일오후 촉발된 증시의 급락세는 18일까지 이어졌지만 어쨋든 심리적 마지노선인 700선대는 방어하면서 장을 마감했다. 증시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 기술적 반등이 있을 수도 나타날수도 있으나 추세 전환을 할 수 있는 모멘텀은 결국 정부의 손에 달려있다며 이제라도 정부가 위기 의식을 갖고 해결책을 내놓을 것을 주문하고 있다.

박승윤 <동아닷컴 기자> parks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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