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유근배/동강 홍수조절댐 한심한 발상

  • 입력 2000년 5월 21일 19시 44분


얼마 전 동강댐 건설이 취소됐다는 정부 발표가 있었을 때 대부분 국민이 크게 반겼다. 우리나라 환경보전 역사에 뚜렷한 전환점을 이루었기 때문이었다. 어깨띠를 두르고 휴지를 줍거나 공장 주변에 나무를 심는 정도의 환경보호에서 대형국책 사업도 환경적으로 건전해야 한다는 수준으로 향상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강댐 대안으로 홍수조절댐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은 황당함을 넘어서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바로 그 자리에 본래 댐 높이 98m에서 18m를 낮추어 80m 높이의 홍수조절용 댐을 건설하려는 발상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동강댐이 지질적 안정성, 생물종과 문화재의 보호 등 기초적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할 뿐만 아니라 대형재난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는 환경적 측면은 다시 논의할 가치조차도 없기 때문이다.

우선 그 엄청난 투자를 통해 홍수조절의 단일한 목적을 추구하려는 계획은 대형국책사업기관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는 소위 편익이 비용을 넘어서야 한다는 원칙에 어긋난다. 홍수조절을 위해서라면 시간을 두고 신중한 연구를 통해 지금까지 제시된 대안을 검토하고, 우리나라 산악지역, 구체적으로는 석회동굴이 조밀하여 스펀지 같다는 동강유역에 적합한 대안들을 개발하는 것이 현명하다.

지역 사정에 밝은 사람들은 홍수조절용 댐의 배후에는 수몰 예정지 주민들의 경제적 보상과 이를 이용하려는 개발세력의 이해가 얽혀있는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홍수조절댐이 들어서면 수몰지역에 예정된 보상은 그대로 집행될 것이라는 유언비어가 일찍부터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동강댐이 취소되는 국민적 쾌거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의 가슴 한구석에는 심히 우려되는 바가 있었다. 동강 유역의 주민들, 특히 수몰 예정지 주민들이 입은 경제적 정신적 피해가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동강댐 건설계획 발표이후 주민들은 엄청난 빚을 지게 되었다. 재산이 압류되고 경매의 위협 속에 지내는 사람들, 빚 독촉에 시달린 나머지 자살한 사람까지 나오고 있다. 보상비를 염두에 두어서인지 금융기관들은 다투어 주민들에게 대출을 했다. 주민 일부는 발빠르게 보상비를 올려 받을 수 있는 시설, 예컨대 사설도로를 급조하고, 유실수를 많이 심었다. 순박했던 주민들에게 암암리에 그러한 노하우를 전파한 세력이 존재했던 것은 지금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동강에 다목적댐이 들어서서는 안된다. 홍수조절댐은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이 지역 주민들의 상처를 지금처럼 외면해서는 안된다. 국민 모두가 그들의 아픔을 같이 나누어야 한다. 지난 몇년 간 눈덩이처럼 불어난 부채를 갚는데 도와줘야 한다. 댐 건설을 추진한 정부기관과 댐 건설 계획의 백지화를 위해 노력한 사회단체들이 이제는 합심해 그 일을 담당해야 한다.

우선 이들의 부채를 탕감시켜주기 어렵다면 장기 저리로 전환시켜주어야 한다. 길거리로 내몰리는 가정을 구하고,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는 빚을 비관한 자살을 막아야 한다. 이들이 재기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영농자금을 마련해주고, 그동안 수몰을 염두에 두고 방치해 엉망이 돼버린 집도 수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지역의 잠재력을 일깨워 고루 잘 살 수 있는 이 지역 고유의 발전상을 마련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동강을 주제로 국민의 환경의식을 고양시켰던 사회단체들도 이 지역을 돕는 일에 참여해야 한다.

정부는 동강댐의 계획과 추진, 홍수조절댐의 대안 제시 과정에서 정부기관들과 정부출연기관들이 그 목적에 합당하게 운영되고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시대의 변화와 함께 이미 존재 이유를 잃어버린 기관들은 없는가. 국민 복지보다는 기관의 존립을 위해 구태의연한 작태를 반복하는 기관이 존재한다면 읍참마속의 결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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