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안정의지가 무색했던 증시
재정경제부 장관과 금융감독위원장이 22일 증권·투신업계의 사장단과 잇따라 간담회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주식시장은 폭락세를 기록했다. 거래소의 종합주가지수는 전주말보다 39.07포인트 떨어진 691.61로 마감돼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작용하던 700선이 무너졌다. 연중최저치인 688.36보다 3포인트밖에 높지 않은 수준이다. 코스닥지수도 12.59포인트 하락한 122.41로 장이 끝났다. 하락율이 9.32%에 달한다.
이날 주가 하락은 전주말 미국 증시가 하락세를 보인데다 선물지수가 4.5포인트나 떨어진 88.00을 기록, 현물지수보다 저평가된 백워데이션이 지속되면서 프로그램 매물이 200억원가까이 쏟아진 것이 겉으로 드러난 요인. 그러나 이같은 표면적 요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시장 참가자들의 투자심리 위축이다.
이날 이헌재 재경부장관은 증권사 사장들과 만나 금융 구조조정과 이에따른 공적자금 투입 문제에 대해 시장에서 불투명하다고 생각되는 정책 방향을 밝혔다. 이용근 금감위원장은 투신사 사장들에게 시장의 수급 불안을 야기시키던 한 원인인 뮤추얼펀드와 관련해 만기 연장 허용 방침을 시사했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금융정책 최고 당국자들의 이같은 발언에 대해 실망 매물을 쏟아냈다. 현재의 금융시장 상황이 정책당국자의 '립 서비스'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음을 시위한 것이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환율, 유가, 금리등 거시지표의 불안으로 투자심리가 얼어붙으면 개별 종목의 주가가 내재가치보다 크게 떨어졌다 하더라도 매수세가 나타나지 않고 정부의 긍정적인 정책도 신뢰를 되찾기 전에는 효력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해외 분석기관의 부정적 전망도 한 요인
이날 주가의 급락은 외국계 증권사들의 국내 경제에 대한 부정적 전망도 한 몫 했다.
UBS워버그증권은 이날 '한국증시 전략'에 관한 보고서에서 투신권 구조조정이 지연되면 여름까지 종합주가지수가 625선으로 하락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전망했다.
워버그증권은 한국정부가 향후 금융구조조정에 30조원의 공적 자금이 추가 소요될 것이라고 밝힌 것은 바람직하나 이 자금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 그리고 대우 및 여타 워크아웃기업들의 채권에 대한 기관간 손실분담을 어떻게 할 것인지는 아직도 분명히 밝히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투신 등 금융권 구조조정에 실패하게 되면 삼성전자 등 최우량주들까지 약세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다며 한국정부는 금융부문의 문제들을 조속히 해결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이 보고서는 촉구했다.
또 미국의 S&P에서는 공식적으로 발표된 재벌들의 부채비율이 의문시된다고 지적했고 모건스탠리는 투자비중을 낮추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외국계 분석기관의 부정적 전망은 한국정부에 대한 외국인들의 신뢰를 추락시키면서 투자자들도 불안하게 만드는 주 원인이 되고 있다.
◆외국인 매매 동향이 급락세를 꺽을수 있는 변수
외국인들은 22일 거래소에서 340억원규모를 순매도했다. 규모가 크다고 볼수 없다. 외국인들은 지난주 새한그룹의 워크아웃 신청 여파로 은행들의 부실이 늘 것을 우려, 이날 주택은행, 한빛은행등 은행주를 많이 내다 판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아직 삼성전자등 대형 우량주를 매도하는 움직임이 보이지 않은 점은 긍정적이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지난97년 외환위기전 외국인들이 초기에는 주변주를 정리하고 지수와 관련된 대형우량주 비중을 늘려나가다가 막판에 이를 팔고 나간 적이 있어 외국인들의 최근 움직임도 계속 주시해봐야 한다고 지적했지만 아직 외국인의 엑소더스를 염려할 수준은 아니라는게 일반적인 진단이다.
신흥증권 정병선이사는 오히려 요즘은 외국인도 국내 기관투자자들처럼 단타 매매를 많이 하기 때문에 외국인의 동향에 민감해지기보다는 거시경제 전반적인 측면에서 증시의 방향성을 봐야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어쨋든 700선이 무너진 상황에서 기술적 반등이라도 이끌 주체는 외국인이 유일한 것이 현실. 단기적으로 미국 증시 동향과 이에따른 외국인 매매동향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이다.
한편 살로먼스미스바니환은증권의 전용배 부장은 주가가 일단 700선밑으로 떨어지면 외국인들이 일단 보유 물량을 줄여놓고 보자는 관망심리가 작용, 매물을 내놓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발 물러서는 투자자세 필요
한화증권 황성욱 대리는 4월이후 종합주가지수가 3중 바닥을 쳤기 때문에 기술적 반등의 가능성이 있지만 700선 붕괴를 계기로 주가 수준 자체가 한단계 떨어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그 분기점은 앞에서 언급한대로 외국인들의 매매 패턴에 달려있는데 개인투자자들로서는 숨을 고르며 장세를 지켜보는 투자자세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신흥증권 정이사도 시장에 불안 요소가 아직 상존해 있는 상황에서 개인투자자는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반등 움직임이 확실할 때까지 현금 보유 비중을 늘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또 코스닥시장의 경우 일부 종목은 버블이 해소된 수준까지 떨어졌지만 앞으로는 오히려 역버블 현상에 의해 더 빠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태. 외국인들이 22일에는 소폭의 순매수를 보였지만 기관투자자들은 여전히 '팔자'세를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승윤 <동아닷컴 기자> parks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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