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득헌의스포츠 세상]질기디 질긴 훌리거니즘

  • 입력 2000년 5월 22일 19시 13분


풋볼(football)은 가장 인기 있는 단체경기를 포괄하는 말이다. 축구(사커), 미식축구, 럭비, 호주축구, 헐링, 게일축구도 풋볼이다. 여러 형태의 풋볼 중 축구에서만 훌리거니즘(라이벌 팬이 축구장뿐만 아니라 주변 지역에서 벌이는 집단적 폭력행위)이 생성된 이유는 무엇일까.

학자들의 분석은 다양하다. 경기장 내 폭력에 따른 관중간 적대감, 노동자계급의 반사작용, 자연적 충동, 지역간 경쟁심, 파괴의 매력, 미디어 영향 등은 대표적인 것이다. 그러나 훌리거니즘은 수그러들었다 다시 나타나곤 해 학자들을 곤혹스럽게 했다. 어쨌든 나는 축구의 역사와 문화를 주목한다.

훌리거니즘은 1960년대 영국에서 형상화됐지만 사실 ‘축구 불상사’는 축구의 역사와 궤를 같이했다. 1314년 에드워드 2세의 축구금지령을 비롯해 영국에서의 축구금지법은 수세기 동안 몇 차례 있었다. 관중간 폭력사태로, 군사훈련에 유용한 양궁과 복싱으로부터 청년을 유리시킨다는 이유로도 금지됐었다. 근대축구 규칙이 만들어진 1862년 이후에도 축구 폭력은 심판 위협 등 여러 형태로 나타났다. 1920년대 지역경쟁심리가 응원전으로 나타나며, 응원단은 거리에서 칼과 쇠몽둥이를 들고 맞섰다. 1930년대에는 가게 침입과 선수 및 경찰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졌다.

19세기 초 아일랜드에서 런던으로 이주해 주먹으로 술집을 장악한 패트릭 훌리한으로부터 유래한 훌리거니즘은 1980년대에 더욱 격렬해졌다. 관중이 군대 같은 조직을 구성해 상대 응원단을 공격하는 구너스(폭력단) 수사이드 스쿼드(자살단) 헤드헌터(인간사냥꾼) 같은 악명 높은 응원단까지 나왔다. 영국팀과 이탈리아팀 경기에 앞선 난동으로 39명이 죽고 250명이 다친 1985년 브뤼셀 헤이젤경기장 참사의 배경도 그런 것이었다.

축구 폭력은 팬이 축구를 경기로만 보지 않고, 스스로를 팀의 지원자로 여기며 축구를 보상의 대상으로 삼는 데서 나온 것으로 여겨진다. 영국에서 발생한 훌리거니즘이 급속히 전 유럽과 남미로 확산됐고, 경기장 폭력이 끊이지 않는 것도 말하자면 축구를 대하는 문화가 비슷하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주 코펜하겐에서 열린 터키팀과 영국팀의 유럽축구연맹컵 결승전에서도 훌리건들의 충돌로 경찰이 곤욕을 치렀다. 지난달 터키에서의 준결승에서는 영국팬 2명이 흉기에 찔려 숨졌다. 영국은 1990년부터 축구 폭력 근절을 위해 범죄정보국 특별조직으로 축구정보단을 가동하고 있고, 유럽국가들이 큰 행사 때마다 공조하고 있으나 기대에 미흡한 형편이다. 훌리거니즘의 뿌리가 깊다는 증거이다.

2002년 월드컵조직위는 훌리거니즘에 대해 다소 느긋한 것 같다. 그러나 간단히 생각할 일이 아니다. 훌리거니즘은 결코 한때의 열병이 아니다.

윤득헌<논설위원·체육학박사>dhy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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