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남찬순/핵없는 세상 올까?

  • 입력 2000년 5월 22일 19시 13분


현재 지구상의 전략 전술 핵무기는 모두 2만6000여개로 추정된다. 미국이 ‘맨해튼 프로젝트’에 따라 처음 핵실험에 성공한 것이 45년 7월 16일. 숫자로 따지면 인류는 지금까지 매년 약 500개의 핵무기를 만든 셈이다. 미국이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한 2개의 원자폭탄에 희생된 사람은 약 10만명. 핵무기 500개라면 당시의 성능이라 해도 수천만명의 목숨을 단숨에 앗아갈 수 있다. 우리는 그만큼 가공할 ‘자멸무기’를 50여년 동안 꾸준히 생산해 온 것이다.

▷냉전시대는 핵공포가 오히려 핵전쟁을 억제하는 효과 때문에 지구촌은 매일 가슴 조이는 생활을 하면서도 핵재앙은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냉전시대가 아닌데다 인도 파키스탄 등 제3세계 국가들은 자기들끼리 핵경쟁 체제에 돌입해 있다. 핵무기가 흔하게 널려 있어 ‘아마추어 핵개발국’들이나 범죄단체들이 핵무기로 불장난을 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핵통제요원 중에는 알코올이나 마약중독자가 없으라는 법도 없다. 그래서 냉전체제 붕괴 이후 인류는 더욱 핵에 노출됐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마침 며칠전 폐막한 핵확산금지조약(NPT) 제6차평가회의에서는 미국 영국 러시아 중국 프랑스 등 핵 5대강국이 시한을 못박지는 않았지만 핵무기 완전 제거를 약속했다고 한다. 이들 5대 강국이 핵무기 폐기의사를 공개적으로 천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귀가 솔깃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까지 그들의 태도로 봐서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약속이지만 그래도 기대를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핵무기에 관한 한 무엇보다 이들 5대 강국이 모범을 보여야 한다. 자기들은 엄청난 핵무기를 보유하면서 여타 국가들에 대해서는 핵무기를 갖지 말도록 강요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미국은 지금도 세계 28개국이 비준을 마친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의 비준절차마저 끝내지 않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간의 전략핵감축협정도 아직은 갈 길이 멀다. 프랑스와 중국은 세계의 이목에 상관없이 핵실험을 계속했다. 이번 NPT회의 합의만은 정말 그같은 ‘가식’으로 포장된 것이 아니기를 바란다.

남찬순<논설위원>chans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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