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음란물 학술세미나]"규제가 능사 아니다"

  • 입력 2000년 5월 22일 19시 36분


지난 18일 연세대에서 열린 ‘인터넷 음란물과 표현의 자유’에 관한 학술세미나는 이 분야에 관한 최초의 학술적 접근으로 많은 관심을 모았다.

연세대 언론연구소(소장 서정우언론홍보대학원장)이 마련한 이번 세미나에는 특히 인터넷 음란물에 대한 시연과 인터넷 음란기준물의 분류기준에 관한 소개 및 관련 학자들의 뜨거운 토론이 이어져 시종 긴장감을 자아냈다.

인터넷 음란물 전문가인 어기준씨(한국컴퓨터생활연구소장)의 안내로 인터넷 음란물이 시연되자 신문방송학과 교수와 대학원생이 대부분인 청중의 반응은 다양하게 나뉘었다.

“주최측에서 ‘깜짝 놀란만한 것’을 보여주겠다고 해 내심 기대를 하고 왔는데 전혀 새로운 것을 보지 못해 실망스러웠다"(한림대 김신동교수)에서부터 “충격을 받았다"(건국대 김동규교수)” “‘야한’아이들에 ‘순진한’ 부모들인 것 같다"(건국대 김동규교수) “생전 처음 봤다"(한양대 윤선희교수)에 이르기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했다.

당초 규제론이 대세를 이룰 것이라는 예측과는 달리 대부분의 참석자들은 언론학자 답게 “인터넷 음란물이 과연 유해한 지에 대한 객관적인 연구가 있어야 하며 무조건적 규제만이 능사는 아니다”는 유보적 입장과 신중론을 보였다.

순천향대 장호순교수는 “민주주의의 대전제인 ‘표현의 자유’는 ‘표현’과 ‘행동’을 구분짓고, ‘표현’의 경우는 설사 유해하더라도 넓게 허용해 온 것이 보통”이라며 “인터넷 음란물의 구체적이고 과학적인 유해성 여부에 대한 입증없이 규제논의에 나서는 것은 일의 앞 뒤가 바뀐 것”이라고 지적했다.

방청석의 한 언론인도 “어떠한 규제도 청소년의 호기심을 억누를 수는 없을 것”이라고 전제하면서 “‘TV끄기 운동’보다는 ‘TV 바로보기 운동’이 더 효과를 거뒀던 것처럼 인터넷 음란물을 현실로 인정하면서 학교와 가정에서 ‘바로보기’ 운동을 펼쳐 이에 대한 저항력을 길러주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라고 주장했다.

서울여대 우지숙교수는 “‘O양 비디오 사건’의 경우 여성에 비해 상대남성은 피해가 적었다”고 지적하면서 “인터넷 음란물의 규제에 앞서 우리 사회의 성 차별성과 거대 성담론의 편협성을 먼저 주목하게 된다”고 말했다.

한림대 김신동교수는 “비아그라를 먹고 부부의 행복을 찾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성범죄를 저지른 사람도 있다. 같은 약을 먹고 다른 짓을 하면 이것이 약 때문인지 사람 때문인지는 가려볼 필요가 있다”는 예를 들며 인터넷 음란물의 유해성에 관한 과학적 조사를 당부하면서 “매체의 진화는 성 인식에 대한 진화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이화여대 유의선교수는 “꼭 필요한 최소한의 규제는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규제비용이 엄청난 데 비해 효율성은 상당히 적을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오명철기자>oscar@donga.com

▼발제논문 요지▼

▽성동규 교수(중앙대 신문방송학) 〓 포르노를 보기 위해 인터넷을 이용하는 ‘섹티즌’(섹스+네티즌)이 등장할 정도로 ‘지구촌 홍등가’가 이뤄지고 있다. 지난해만도 하루 평균 4,300만개 웹페이지와 1천만개의 이미지가 갱신되며, 이중 상당수가 포르노그래피와 관련되어 있다.

이같은 확산을 막기 위해 미국 등 선진국은 법적 규제를 도모했으나 표현의 자유 침해에 막혀 좌절되자 점차 민간 자율규제에 기대는 추세다. 특히 자녀의 음란물 접속을 막는 인터넷 포르노그래피 차단 사업을 상업적으로 발전시키는 식의 자율 규제책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도 불가능한 제도적 ‘금지’보다 효과적인 민간적 ‘관리’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미성년자들이 섹트즌이 되지않도록 도와주는 것이 인터넷 포르노그라피를 차단의 근본이다.

▽윤태진 교수(단국대 언론홍보영상학부) 〓 포르노그래피의 반사회적 측면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인터넷 포르노 이용자는 청소년이나 성도착 환자만이 아니라 주변의 보통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 네티즌 중 70% 이상이 혈기왕성하고 성에 개방적인 30세 미만 젊은이로 대부분 호기심 때문에 인터넷 포르노를 접한다.

인터넷 포르노그래피에 대한 ‘이중성’도 문제다. 나는 괜찮지만 남들, 특히 청소년이나 여성에게는 좋지 않다는 ‘제3자 효과’가 적용되는 경우가 많다. 아울러 인터넷 규제의 불가피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인터넷은 선, 포르노는 악’이라고 이분법적으로 규정하는 것도 성 담론 자체를 부정적으로 규정할 우려가 있다.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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