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시절에 작곡가가 되려다 약간의 발성 음치 때문에 포기한 나에게는 음악이 각별한 추억이다. 피난에서 돌아와서는 당시 귀했던 제니스 라디오를 통해 음악프로에 매달렸고, 결혼하고 전셋집을 옮겨 다닐 때는 그 무거운 음향기기들을 소중히 모시고 다녔다. 하루라도 음악을 듣지 않으면 불안할 정도였으니 내 시의 형식이나 리듬에 음악 영향이 컸을 것이다. 그러나 음악을 작품에 직접 거론하는 것은 아주 삼갔다. 그 당시 잡지에 바흐를 비롯해 너무 많은 음악이 시에 등장하고 있었기 때문이고, 아는 체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식민지 시대와 6.25를 겪는 동안 음악을 즐길 수 있는 독자도 적었으리라.
그러다 나이가 많아지면서 얼굴이 두꺼워졌는지, 그만하면 그동안 ‘지음(知音)’ 독자들이 늘었으리라 생각했는지, 언제부터인가 ‘봄날에 베토벤 후기 피아노 소나타를 들으며’ 같은 좀 현학적인 제목의 시도 쓰게 되었다.
“세상 모든 일 다 그렇다고 하지만/ 클라우디오 아라우가 천천히/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0번 마지막 악장을 치듯/ 치는 도중 찻물 끓어 그만 의자에서 일어섰나,/ 곡이 끝나듯/ 그렇게 살고 싶다.”
삼년 전에 씌어져 시집 ‘버클리 풍의 사랑노래’ 앞부분에 실려 있는 이 시는 베토벤의 아름다운 음악 악장들 가운데서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악장에 바친 헌사다. 가슴 약간 두근대며 듣다 보면 끝머리의 화려함 없이 끝나는 줄 모르게 끝나는 곡이다.
속도가 느리면서 서정적인 아라우 연주의 그 곡 속에는, 늘 바람 센 미시령의 어느 바람없는 날 무한 곡선의 호랑나비가 날기도 하고, 바로 전 해에 방문했던 이탈리아 피렌체 근처 시에나 두오모 성당, 오후 두시 햇빛이 정면으로 쏟아져 들어와 스테인드 글라스의 모자익들을 모두 지우며 성당을 온통 빛으로 채우고, 그 빛 속에서 그야말로 온몸으로 무한을 느낀 체험이 재현되기도 했다. 하긴 정성 들여 지은 절이나 성당 자체가 곧 음악이고 문학이지만.
황동규(시인·서울대 영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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