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규의 최후진술은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힘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여야 합니다. 그런데 72년 유신과 더불어 까닭없이 말살되어 버렸습니다. 그렇게 하여 유신체제는 국민을 위한 체제가 아니라 박정희 대통령 각하의 종신대통령 자리를 보장하기 위한 체제가 되어버렸던 것입니다. 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대통령이라도 자유민주주의를 지킬 의무와 책임은 있어도 이것을 말살할 권한은 누구로부터 받을 수도 없고 절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는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듬해 몰아닥친 경제 위기는 이른바 박정희 신드롬을 불러왔고 그런 사회분위기 속에서 조심스럽게 거론되던 ‘김재규 명예회복’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버렸다. 오히려 김씨를 추모하는 ‘송죽회’회원들이 남한산성 공원묘역에 있는 그의 무덤에 극비리에 세운 묘비마저 누군가에 의해 쓰러졌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을 중심으로 한 ‘10·26 역사 재평가와 김재규 전중앙정보부장 명예추진위원회’가 새로 구성됐다는 소식이다. 이 위원회 인사들은 어제 김씨의 20주기 추모제를 열고 그의 명예회복에 나서기로 했다고 한다. 군법회의 재판부가 판결한 대로 김재규는 ‘국가와 민족에 대한 반역죄’를 지은 것인가, 아니면 그가 주장했던 대로 박정희 유신독재를 종식시키는 ‘혁명’을 한 것인가. 이제 그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 “과거에 눈을 감는 자는 현재에도 맹목일 수밖에 없다.” 바이츠제커 전독일대통령의 말이다.
전진우<논설위원>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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