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현대'문제 해법

  • 입력 2000년 5월 26일 19시 33분


한국경제의 불안요인으로 잠수해 있던 현대 문제가 마침내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현대건설 등 현대그룹 일부 계열사가 자금난에 빠지면서 외환은행이 1000억원을 긴급 지원하기로 했고 이 여파로 주식시장의 투자심리가 냉각돼 주가가 폭락하는 등 금융시장이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미 작년 하반기 외국 금융기관들이 현대에 대한 여신공여를 제한하기 시작하면서 현대위기설은 국내외 자금시장에 폭넓게 퍼지기 시작했다. 이런 판국에 이른바 ‘왕자의 난’으로 불린 현대그룹 정씨 형제간의 후계다툼이 터지면서 국내외 투자자들의 신뢰를 잃었다. 또 정부의 투신사 구조조정을 계기로 현대투신의 부실이 그룹전체로 번질 가능성이 예고되면서 현대건설과 현대상선의 회사채 만기연장이 어려워지는 사태를 부른 것이다.

정부와 주거래은행은 4000억원 정도를 지원해주면 현대가 위기를 넘기고 시장의 동요도 가라앉을 것으로 보고 있으나 너무 안일한 인식인 것 같다. 가장 큰 부실덩어리인 현대투신 문제는 아직 해결의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고 계열사들의 회사채 발행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상태다. 정부가 그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도 또 한번 미봉책으로 화를 면하려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주식시장이 이미 정부의 발표를 믿지 않는 반응을 보인 것에 당국자들은 주목해야 한다.

정부가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확실한 현대 대책을 내놓아 사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는 노력에 나서기를 촉구한다. 아울러 현대도 서둘러 황제식 경영의 탈을 벗고 진정 다시 태어난다는 각오로 그룹 개혁에 뛰어들기 바란다. 정주영명예회장의 지분 정리 정도로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려 든다면 큰 오산이다.

정부는 긴급지원에 나선 두 회사를 제외한 다른 계열사의 자금난은 현대그룹이 견딜만한 수준이라고 강조하고 있으나 가뜩이나 경제위기설이 나도는 상황이라 시장의 불안은 쉽게 가시지 않는 것 같다. 현대는 영업력 부진으로 좌초했던 대우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하지만 재벌 몰락의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는 우리가 지금도 뼈아프게 체험하고 있다.

정몽헌 회장은 정주영 명예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완전히 손을 뗀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과감한 계열분리와 자산매각, 적자부문 정리를 통해 몸집을 줄이는 획기적인 조치가 나와야만 한다. 현대그룹 문제가 새로운 사태의 시발이 되어서는 안된다. 정부와 현대 양측이 현실을 솔직히 인정하고 특단의 대책을 내놓는 것만이 더 큰 국가적 손실을 막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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