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꽂이]최재천/'여성과 남성이 다르지도 똑같지도…'

  • 입력 2000년 5월 26일 20시 08분


서양의 민간설화에는 아내를 여섯이나 죽이다 일곱번째 아내에게 들켜 결국 죽음을 면치 못하는 ‘푸른 수염’이라는 사내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일곱번째 아내 주디스는 남편으로부터 일곱번째 방문은 절대로 열지 말라는 명령과 함께 그의 성안에 있는 모든 방들의 열쇠를 넘겨받는다. 처음 여섯 개의 방안에는 남편이 자기에게 알려주고 싶어하는 그의 멋진 모습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주디스는 방마다 화려하게 펼쳐져 있는 남편의 모습 뒤에 무언가가 숨겨져 있다는 느낌을 떨치지 못해 일곱번째 방문을 열고 만다. 그 속에서 그는 자기처럼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했던 여섯 부인들의 시신을 발견한다.

‘여성과 남성이 다르지도 똑같지도 않은 이유’는 남성 세계의 일곱번째 방문을 거침없이 열어 젖힌다. 그 동안 남성들이 기꺼이 열어 보인 여섯 개의 방에는 모두 한결같이 만물의 척도인 남성에 비하여 무언가 모자라는 여성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첫째, 너무도 작은 표본에서 발견한 너무도 작은 차이건만 여성의 뇌는 크기나 기능 면에서 남성만 못해야 했다. 둘째, 비만으로 더 심각한 문제를 겪는 쪽은 사실 남성인데 젖가슴만 풍만하고 몸은 깡마른 ‘남성의 여인’이 되고자 정작 다이어트는 여성들이 하고 있다. 지방은 여성에게 필수적인 영양소이며 르느와르의 여인들이 그랬듯이 엉덩이나 허벅지 또는 옆구리 등에 저장되게 마련이건만.

셋째, 월경이란 여성에겐 너무도 자연스런 생리현상이고 어쩌면 남성의 정액과 함께 들어온 병원균을 씻어내기 위한 적응일 수도 있건만 오랫동안 병으로만 여겨졌다. 넷째, 현대의학은 ‘70kg 남자’를 표준으로 이루어졌으며 여성들만의 독특한 생리현상들은 골치 아픈 변이로 취급되었다. 다섯째,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감정의 기복도 남성에게는 그저 극복해야 할 문제지만 여성에게는 병이었다. 여섯째, 잠자리에서 벌어지는 온갖 성적 문제들의 원인은 늘 여성에게 있었다.

그러나 정작 우월론을 따지자면 불리한 쪽은 남성이다. 그래서 일찍이 다윈은 생명의 궁극적인 목적인 번식의 최종결정권을 쥐고 있는 여성이 삶의 중심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제 바야흐로 여성의 세기가 열렸다. ‘푸른 수염’을 잘라버리고 멀었던 한쪽 눈을 크게 떠 평등과 같음의 차이를 분명히 봐야 한다. 그래야 성이 사회적 불평등의 원인이 되는 세상은 막을 내릴 것이다.

<최재천 서울대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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