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스 폴러스 독일대사(65)는 “한국 국민이 남북정상회담에 너무 많은 것을 바라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며 “서로 한 민족이라는 것을 확인하는데서 회담의 의미를 찾아야 할 것”이라고 ‘통일국가 선배’로서 충고했다.
62년 외교관으로 첫 발을 디딘 폴러스대사는 한국과 베트남 등 주로 아시아에서 근무한 아시아통. 95년 한국에 부임, 5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다음달 귀국, 공직생활을 마감한다. 25일 독일대사관에서 그를 만나 정상회담의 의미와 전망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다.
폴러스대사는 “빌리 브란트 총리시절 서독은 동독과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할지, 협력할 것인지 고민하다 결국 정상회담을 통해 교류와 협력을 선택했다”며 “남북한 지도자가 처음 만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고 남북관계를 푸는 전기가 될 것”이라고 의미를 평가했다.
그는 “김대중대통령이 베를린선언을 통해 민족화합과 통일의지를 이미 밝혔고 김정일국방위원장이 화답해 회담을 개최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번 회담의 과제는 입장은 다르지만 서로를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자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를 전제로 폴러스대사는 “만나서 악수하고 앞으로 대화하자는 원론적인 입장만 확인하더라도 성공한 것이다. 남북 지도자에게 이번 회담에서 반드시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야 한다고 집착하지 말라고 충고하고 싶다”고 주문했다.
그는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라고 설파한 비스마르크를 인용하면서 “햇볕정책은 남북교류와 평화통일을 합리적이고 현실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대안으로, 독일정부도 이를 적극 지지하라는 훈령을 보내왔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그는 무조건 북한을 경제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무조건 지원론’과 북한이 먼저 개방과 민주화를 한 뒤 지원해야 한다는 ‘상호주의론’에 대해서도 소신을 피력했다. “서독은 동독에 무조건 경제지원을 하면서 개방과 통일을 이뤄냈다. 동서독과 마찬가지로 남북한도 한 민족이다. 한국은 인도적인 차원에서 우선 경제적인 지원을 한 뒤 민주화와 개방을 요구하는 정책을 취해야 한다. 북한의 경제상황을 외면한 채 상호주의만을 주장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폴러스대사는 통일비용 문제에 대해서도 분명한 의견을 제시했다. “서독은 통일을 위해 동독 마르크화의 교환과 동독인에 대한 사회복지혜택 등 비싼 대가를 치렀다. 통일비용을 거론하면서 한국 국민이 부담하고 있는 국방비와 분단의 직간접적인 피해 등 분단비용은 왜 제기하지 않나. 통일비용은 북한에 대한 투자이면서 결국 미래의 한국에 대한 투자다.”
그는 “동서독 정상회담의 추진 당시 서독의 현안은 동서독의 평화로운 공존과 이산가족의 상봉이었다”며 “결국 동독은 개방과 협력을 택했고 서독은 시간이 지나면서 동독과 기본적인 관계가 깨어지지 않는 선에서 통일을 준비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서독은 매년 유엔 연설을 통해 서독의 최대 목표는 통일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것은 동독이 외국이 아니라 ‘하나의 민족’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으며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었다”며 독일 통일의 대장정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폴러스대사는 독일의 경험을 토대로 한반도 통일문제에 관해서도 “서독헌법에 ‘독일인을 연방공화국 국적을 가진 사람들로, 동독지역을 연방공화국 영토’로 규정했기 때문에 한국의 탈북자 문제 같은 것이 발생하지 않았다. 한국은 (통일을)준비할 시간이 아직 많으므로 상황에 맞는 통일방안을 고민하고 준비해야 한다”고 자상하게 충고했다.
<백경학기자>stern10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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