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수도 양곤시내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군인들이 삼엄한 경계를 펼쳐 긴장감이 감돌았다. 군부는 최근 야당 인사 등 수백명을 체포하는 등 예상되는 시위 차단에 주력해왔다. 특히 군부는 이날NLD 본부의 인근 도로를 철통같이 봉쇄, 빌딩 주위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출입자들을 일일이 체크했다.
이런 가운데 아웅산 수지와 그의 지지자 300여명은 군부의 감시망을 피해 몰래 NLD 본부건물에 들어가 총선 승리 10주년 기념식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아웅산 수지는 “군부독재에 맞서 민주화 투쟁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며 “언젠가는 민주주의를 쟁취할 것임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수지는 “88년 민주화운동으로부터 12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그만큼 더 민주주의에 접근하고 있다”고 역설했다.
▼헌법수호 내세워 民政이양 거부▼
▽미얀마 민주화의 좌절〓1990년 민주화의 열기속에 실시된 총선결과 수지가 총재로 있는 NLD이 485석중 392석을 획득, 압승했다. 62년 군부 쿠데타 이후 군사정권의 폭압 아래 놓여 있던 미얀마는 야당의 총선승리로 민주화의 길을 걷는 듯했다. 그러나 군부정권은 ‘헌법을 수호한다’는 구실을 앞세워 민정이양을 거부했다.
군부는 이 사건 이후 수지에 대한 가택연금과 민주인사의 탄압을 강화하면서 미얀마는 외국의 원조가 끊어지는 등 국제적으로 고립되고 있다.
91년 아웅산 수지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계기로미얀마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높아지자 군부는 국민회의 구성을 제의하고 수지의 가택연금 해제 등 일련의 유화정책을 취했다.
그러나 98년 NLD가 총선결과에 근거한 국회소집을 요구하며 독자적으로 국회를 대표하는 ‘10인 위원회’를 발족시키자 군부는 다시 강경 자세로 돌아서 ‘10인 위원회’를 제명시키고 야당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에 들어가 미얀마의 민주화는 요원해졌다.
▽최근 정치상황과 전망〓NLD는 군부가 더 이상 민정으로 이양할 뜻이 없다고 보고 최근 국제 여론 호소에 주력하고 있다. 수지는 4월 NLD ‘10인 위원회’인사들과 미얀마의 정치현실을 인터뷰한 비디오 테이프를 만들어 제네바 인권위원회에 전달했다. 수지는 이 테이프에서 “비록 군부가 총선 결과를 탈취했지만 미얀마 국민은 총선승리 10년이 지난 지금도 민주정부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있다”며 국제사회의 지지를 호소했다.
▼野 "우리는 끝까지 투쟁할 것"▼
지난 10년간 군부를 상대로 투쟁해 온 NLD도 당선자의 대부분이 투옥되고 의원직 사퇴를 강요당했지만 아웅산 수지를 중심으로 민주화 운동을 벌이고 있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고 자유와 안전, 평등을 가져 올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이들은 말한다.
그러나 군부는 민정이양의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후라 민 국방부 전략연구실 부실장은 “지난 10년간 NLD의 시위로 국제사회의 원조와 투자가 중단됐다”며 NLD가 반정부 투쟁을 중단해줄 것을 요구했다. 군부는 90년 총선이 민정이양을 결정하기 위한 선거가 아니라 제헌의회를 구성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강변하고 있다. 군부정권의 국가평화발전평의회(SPDC)의장 단 슈에는 “길을 가다보면 언젠가 마을에 닿는다”는 말로 민정이양의 길은 아직 멀었다고 강조했다.
▼국민은 좌절감에 빠져▼
지난 10년간 야당인사에 대한 군부의 탄압으로 392명이던 NLD 당선자 중 남은 사람은 4분의 1로 줄어들었다. 98년 수지의 항의농성을 계기로 고양된 민주화 열기도 세월과 함께 국민들의 좌절감 속에 색이 바래지는 분위기를 나타내고 있다. 미얀마 민주화 운동은 또 한번 위기를 맞고 있다. 그러나 아웅산 수지를 중심으로 하는 NLD지도부는 국제여론의 호소와 비폭력투쟁으로 민주화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아웅산 수지 누구인가/미얀마 민주화의 상징·91년 노벨평화상 수상▼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 아웅산 수지(54)는 요즘 군부의 통제로 어느 때보다 고립돼 있다.
현재 양곤 시내의 한 호수부근 저택에 살고 있는 수지는 24시간 군부의 삼엄한 감시아래 지내고 있다. 95년 가택연금에서 풀려났지만 외부인의 출입은 철저히 통제되고 가는 곳마다 비밀경찰이나 군인들이 미행하고 있다. 양곤을 떠날 수도 없다.
수지는 ‘미얀마 건국의 아버지’ 아웅산의 딸. 영국에서 지내다 88년 와병중인 어머니 간호를 위해 귀국,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에 부응해 민족민주동맹(NLD)의 지도자가 됐다. 89년 군부에 의해 가택연금 됐으나 90년 총선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 공로로 91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수지는 귀국이래 영국에 두고 온 두 아들을 보러 가지 못했고 남편이 영국에서 죽어갈 때도 미얀마를 떠나지 않았다. 한번 떠나면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을 우려해서였다.
<백경학기자> stern100@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