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근로시간 단축과 총파업

  • 입력 2000년 5월 29일 19시 28분


민주노총이 법정근로시간을 주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단축하는 주 5일 근무제를 받아들이라고 요구하며 31일부터 총파업에 돌입할 계획을 거듭 천명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에는 98년 2월 노사정 1기 때 ‘근로시간 단축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합의해놓고 차일피일 미루며 성의를 보이지 않은 정부의 책임이 크다. IMF경제위기에 근로시간 단축과 기업의 임금부담 증대를 불러오는 사안에 신중하게 대처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이해하더라도 경기회복이 본격화한 시점에서는 정부가 먼저 적극적으로 나왔어야 한다.

민주노총의 파업 결행을 며칠 앞두고 최선정노동부장관이 부랴부랴 “올해 안에 법정근로시간을 단축하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힌 것은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시기에 총파업만은 피해보자는 정치적 계산이 깔린 것 같아 개운치 않다. 민주노총은 98년 노사정 합의도 지켜지지 않은 마당에 장관 발표는 믿을 수 없으니 주 5일 근무법안을 정부안으로 상정하겠다고 대통령이 발표하라고 요구한다.

재계 입장을 대변하는 경총은 “노사정위에서 논의를 이제 막 시작한 시점에 정부가 민주노총의 파업 압력에 밀려 정치적으로 해결하려 한다”며 노동부의 태도를 비판한다. 실근로시간(업계 평균 주 47.9시간)이 줄어들지 않은 상황에서 법정 근로시간을 단축하면 그만큼 임금인상만을 가져와 기업 부담을 늘린다는 것이 경총 주장이다. 따라서 법정근로시간 단축에 앞서 법정휴가를 모두 소진하고 시간외 수당의 할증률을 현행 50%에서 25%로 낮추며 유급휴일도 줄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경제위기설, 현대 사태 등으로 경제가 어려운 시점에 총파업이 단행되면 생산 및 수출 차질은 물론 한국경제의 대외신인도가 급격히 떨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여기서 민주노총 파업의 합법성 불법성 여부를 논하고 싶지는 않다. 민주노총은 우리 경제가 어려울 때는 참고 있다가 경기회복기에 법정근로시간 단축문제를 제기해 일단 사회공론화하는 데 성공했으므로 정부 및 사용자 대표와 대화를 해보고 나서 어떤 행동에 들어가더라도 더 높은 여론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연내에 관련법을 개정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확인된다면 정부나 민주노총은 발표의 주체에 구애받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정부와 재계도 시간을 끌다가 적당히 넘겨보자는 식으로 임해서는 안된다. 이번에야말로 정부가 약속한 대로 생산활동을 위축시키지 않으면서 근로자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합의를 이루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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