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따라잡기]현대그룹, 해결기미 보이나 아직 난제 많아

  • 입력 2000년 5월 30일 16시 59분


현대문제 해결되고 있나?

현대그룹 사태는 일단 외형면에서는 해결의 물꼬를 향해 급물결을 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대그룹 사태를 완전히 진정시키고 시장이 안정을 찾기 위해서는 아직 남아있는 과제가 산적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현대그룹은 30일 △현대건설이 채권단에 보유 계열사 주식을 담보로 제공하고 △주식처분각서를 제출하는 방법을 통해 3천400억원의 단기유동성을 확보키로 하는 등의 유동성 확보대책을 발표했다. 시장도 일단 이 같은 현대그룹의 계획에 대해 긍정사인을 보냈다.

정부 역시 현대그룹이 제출한 유동성확보 대책을 검토하고 노력한 흔적을 일단 높이 평가했다. 다만 일부 내용의 구체성과 환금성이 떨어진다고 보고 이를 보완해 제출토록 요구했다. 이용근 금융감독위원장은 현대건설의 재무구조 강화를 위해 처분할 수 있는 비주력 및 비상장 계열사와 건설 보유 부동산 등 돈 될 수 있는 것은 모두 매각하라고 촉구했다.

채권단과 현대그룹도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정부가 요구하는 구체적인 유동성 추가 확보 대책을 31일 시장이 열리기 전 아니면 시장이 열리자마자 발표키로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이에 따라 현대는 외자유치와 비주력계열사 매각을 포함한 추가적인 유동성 확보대책을 마련, 이날 오후 귀국한 정몽헌 회장의 재가를 얻어 외환은행과의 최종 조율 후 31일오전 중 공식 발표할 계획이다.

현대사태가 해결의 가닥을 잡고 있다는 쪽으로 해석되는 구석은 현대와 정부 간 최대 쟁점사항이었던 정부의 가신(家臣) 경영진 퇴진요구를 유보키로 한 데서도 감지되고 있다.

정부와 채권단은 이날 현대의 지배구조혁신을 위해 요구했던 정주영 명예회장의 퇴진과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 및 이창식 현대투신 사장 등 일부 가신경영진 퇴진 요구는 접어두기로 했다.

이 위원장은 “정 명예회장의 경우 채권단이 퇴진을 압박하는 것은 모양이 좋지 않으며 이 회장의 경우도 현대그룹 내부적으로 결정해야 할 일이지 채권단이 나서 뭐라 말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현대그룹 사태가 조기에 해결의 가닥을 잡은 데 대해, 증시 전문가들은 현대그룹의 유동성 사태와 작년에 발생한 대우그룹사태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시각을 정부가 갖고 있는 때문으로 풀이하고 있다.

현대그룹은 우선 정공과 자동차, 중공업 등 많은 업종에서 국내에서 선두에 있거나 국제적으로 그 경쟁력을 인정받으며 이익을 내고 있고, 따라서 현대는 현금흐름이 상대적으로 좋으며 설비시설 등 자산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는 점이 대우와 크게 다르다는 것이다.

경영내용과 관련해서도 지난해 당기순이익의 경우 현대중공업 3200억원, 현대전자 2200억원, 현대자동차 4100억원, 현대정공 220억원 등 주요 계열사들이 흑자를 내고 있다. 현대그룹 사태의 근본 원인이 일시적인 유동성 부족 탓이지, 현대그룹의 펀더멘털에는 큰 문제가 없다는 시각이다.

그러나 현대그룹 사태의 조기해결은 난망이라는 시각도 여전히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우선 정부는 현대그룹 사태를 대우사태와 근본적으로 다른 시각에서 보는 것이 확인됐지만 이날 현대가 제출한 유동성 확보방안은 정부의 기대에 크게 못미치는 것은 물론 사안의 근본 해결과 거리가 멀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특히 현대건설 채권단이 유동성 확보방안으로 지분매각을 요구하고 있는 비상장기업에도 마땅히 돈이 될 수 있는 ‘알짜배기’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현대건설이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계열사 가운데 비상장(코스닥 비등록 포함)기업은 현대석유화학, 현대정유, 현대에너지, 현대기업금융, 현대아산, 태화쇼핑 등 6개사다.

이 가운데 현대석유화학은 작년 1조6,306억원의 매출을 올렸지만 457억원의 적자를 기록한 적자기업이다. 현대에너지는 자본총액이 196억원에 지난해 5억원의 흑자를 올린 소규모 회사며 대북사업을 담당하는 현대아산도 37억원의 순손실을 기록, ‘노른자위’ 기업과는 거리가 멀다. 현대기업금융이 그나마 외형 1,070억원에 224억원의 흑자를 낼 뿐이다.

현대그룹 특유의 봉건적인 지배구조에 전혀 변화가 없는 것은 사태 조기해결의 의미를 퇴색시키기에 충분하다. 특히 정부는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과 이창식 현대투신 사장이 잇딴 주가조작과 바이코리아펀드의 불법운용 등으로 주식시장을 완전히 엉망으로 만든 장본인으로 판단하고 있으면서도, 이들에 대한 인사를 현대그룹 내부 문제로 판단을 일임시켜버려 시장의 신뢰를 방관하는 듯한 자세로 돌아섰다.

참여연대는 30일 현대그룹 사태와 관련, “현대는 근본적 해결책을 제시하고 정부는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성명서를 발표한 것도 바로 이 같은 점을 지적한 것이다. 참여연대는 현대그룹 사태가 철저한 구조조정과 진정한 지배구조 개선을 하지 않음으로써 누적돼온 구조적인 문제에서 발생한 것이라며 현대는 기업과 국가경제를 살리기 위해 정부가 아니라 시장을 상대로 하는 지배구조와 영업구조상 개혁조치를 시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함께하는 시민행동도 이날 발표한 성명서를 통해 “현대그룹은 구체적인 유동성 확보방안 마련뿐만 아니라 계열사 정리, 구조개혁, 기업경영 투명성 확보, 지배구조개혁 등 실질적인 개혁안을 공개하고 과감히 추진하라”고 촉구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대우와 현대그룹 사태를 겪으면서 회사채 시장이 제 기능을 상실한 채 완전히 붕괴됐다는 점이다. 특히 현대그룹으로 인해 중견그룹의 경우 회사채 시장이 꽁꽁 얼어붙어버리면서 자금조달에 느끼는 애로가 더욱 크다.

전문가들은 “아직 진행중이지만 현대그룹 사태가 주는 교훈은 시장으로부터 불신을 받으면 어떤 기업도 살아남을 수 없다는 사실을 여실히 입증준 것”이라면서 “신뢰회복을 위해 분명한 방안을 내놓지 않으면 31일의 추가 대책 발표 이후에도 현대와 관련한 소문들이 꼬리를 이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방형국<동아닷컴 기자>bigjo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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