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시사주간지 아에라는 지난해 9월 그를 ‘인터넷으로 사회혁명을 노리는 사내’란 화려한 수식어로 묘사하며 관련 특집을 게재했다. 그러나 최근 일본 주가가 급격히 무너지자 이번에는 ‘허왕’의 시대는 끝났다는 기사를 실었다. 과연 ‘손정의 인터넷 왕국’은 부활할 것인가, 이대로 주저앉을 것인가.
▽‘시가총액 경영’ 위기〓손정의 경영방식의 핵심은 급성장하는 인터넷비즈니스와 금융을 묶는 이른바 ‘시가총액 경영’. 성장 가능성이 높은 사업에 투자해 주가상승으로 기업의 시가총액이 급증하면 이를 토대로 금융권의 자금을 끌어들여 다른 사업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가는 것이다.
1981년 컴퓨터 소프트웨어 유통업체인 소프트방크로 시작한 손사장은 이후 야후, 킹스턴테크놀로지, 지프 데이비스 등 미국의 첨단업체에 속속 투자하면서 세계적인 ‘인터넷 재벌’로 떠올랐다. 최근 10여년간 인터넷 관련 주가가 치솟던 주가급등 시대에는 이 같은 방식의 사업확장은 순조로웠다. 그러나 올 들어 미국 나스닥시장 등에서 인터넷관련 기업 주가가 폭락하자 소프트방크의 확장에 비상이 걸렸다. 소프트방크의 주가도 최고 때의 10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투자기업의 시가총액이 줄면 금융권도 융자해주기를 꺼릴 것은 당연한 일.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소프트방크는 지난해 519억엔이나 되는 경상적자를 내고 2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손사장은 보유주식을 서둘러 처분해 간신히 당기손익은 흑자(84억5000만엔)를 유지했다.
▽아무도 모르는 사업 규모〓소프트방크는 1994년 주식을 공개한 이후 불과 6년 만에 핵폭발과 같은 성장세를 보여왔다. 사원이 8명에 불과한 지주회사 소프트방크를 정점으로 투자대상이 일본내 130개사, 해외 300개사에 이른다. 정확히 어디에 출자했는지는 자세히 밝혀지지 않고 있어 그룹 전모는 손사장 이외에는 아무도 모를 정도.
최근에는 세계은행 산하의 국제금융공사(IFC)와 합작사를 설립해 개발도상국의 인터넷기업에 투자키로 하는 한편 일본내 지방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지역진흥펀드 설립을 추진하는 등 수백개에 이르는 국내외 벤처기업에 투자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2월에는 오릭스 도쿄해상화재보험 등과 소프트방크연합을 결성하고 일본채권신용은행을 인수하는가 하면 다음달 1일에는 미국 나스닥과 손잡고 오사카에서 나스닥저팬을 개장할 계획. 이로써 손사장은 ‘벤처기업을 낳고(투자) 키워서(융자) 어른을 만든다(나스닥저팬에 상장한다)’는 그림을 완성한다는 목표에 한걸음 다가간 것이다.
그러나 최근 주가하락으로 자금융통이 여의치 않게 되자 착수한 사업을 유지하는 데만도 최소 1조엔 이상이 들 것이란 분석과 함께 자금난을 겪고 있다는 소문이 일고 있다. 소프트방크측은 “야후 등 보유주식 차익만 2조9000억엔이고 현금과 예금 형태로 2700억엔을 갖고 있어 아무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일본사회의 거부감〓손사장은 일본 젊은 벤처기업가들에게는 신과 같은 우상숭배의 대상이다. 나스닥저팬에 주식을 공개하기를 희망하며 손사장을 따르는 벤처기업가만 5000명을 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소프트방크가 급성장한 1990년대 중반부터 기존 일본 경제계에서는 손사장에 대한 경계감과 거부감이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전통적으로 제조업을 중시해 오던 일본 사회는 힘들여 물건을 만들지 않고 ‘인터넷을 이용한 돈놀이’로 재벌의 자리에 오르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최근에는 손사장의 ‘뿌리’까지 거론된다. 일본에서 태어난 한국인 3세로 일본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미국에 유학했던 그는 결국 뿌리가 없는 이단자인 만큼 허황한 ‘인터넷 돈놀이’를 쉽게 벌일 수 있었다는 지적이다.
일본 경제계의 손정의 비판 이면에는 그의 무서운 사업확장 능력에 대한 견제심리가 깔려 있다. 인터넷 투자에서 앞선 그가 이런 속도로 계속 성장한다면 일본 경제가 모두 ‘이방인’ 의 손에 들어갈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는 것이다.
<도쿄〓이영이특파원>yes202@donga.com
▼천수이볜 손정의에게 개인 고문 부탁▼
한국계 일본 기업인 손정의(孫正義·42·일본명 손 마사요시)소프트방크사장이 천수이볜(陳水扁·49)대만총통의 개인 고문이 됐다. 천총통은 29일 대만을 방문한 손사장을 만나 “승부 정신이 뛰어난 결단력을 배우고 싶다”며 개인 고문을 맡아 달라고 부탁했다. 천총통은 손사장이 24세의 젊은 나이에 창업한 것을 염두에 둔 듯 “손사장은 젊은 지도자들이 세계적인 조류라는 것을 증명했다”면서 “많은 사람이 나에게 너무 젊다고 하지만 손사장은 나보다 더 젊다”고 말했다.
천총통은 “손사장은 아랫사람에게 권한을 넘기고 고객에게 철저하게 서비스하는 정신으로 성공한 것같다”며 “21세기 대만을 과학기술을 주축으로 한 ‘실리콘 섬’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천총통이 손사장에게 도움을 청한 것은 손사장의 이미지가 ‘젊은 대만, 활력 있는 정부’를 표방하는 자신의 슬로건에 잘 들어맞는 인물이라고 평가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손사장은 “내게 그럴 자격이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면서도 “필요할 때는 적극 협조하겠다”고 요청을 받아들였다. 손사장은 “천총통처럼 젊고 우수하며 민주적인 지도자를 갖게 된 대만은 행운”이라며 “21세기 대만은 정보산업에서 세계를 이끌게 될 것”이라고 화답했다.
<도쿄〓심규선특파원>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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