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속 의학]'반칙왕'/레슬링 뇌-장기손상 위험

  • 입력 2000년 5월 30일 20시 30분


늘 똑 같이 반복되는 하루, 끊임없는 스트레스….

현대인들은 이런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을 꿈꾼다. 그것도 대담하고 확실하게….

영화 ‘반칙왕’은 예금 경쟁에서 늘 남에게 뒤지는 한 은행원의 현실탈출을 상상처럼 그린 영화이다. 주인공은 자기를 괴롭히는 직장상사에게 복수하기 위하여 체격에 어울리지도 않은 레스링을 현실탈출의 수단으로 정한다.

프로레스링의 흥행에만 관심이 있는 흥행주의 제의에 옛날의 향수를 잊지 못하는 체육관 관장이 반칙 경기를 수락한다. 주인공은 시합을 치를 정도의 실력은 안되지만 반칙을 통해 관객의 흥미를 끈다는 계획으로 출전하게 된다.

경기중 두발로 상대방의 가슴을 가격하는 드롭킥이라는 기술이 있다. 체중 80kg 내외에 온몸의 가속도가 붙으면 이 기술로 상대방 갈비뼈 몇 개 부러뜨리는 것은 쉬운 일이다.

뼈가 금이 가는 것과 부러지는 것과는 주위 조직의 손상정도가 크게 다르다. 뼈가 부러지면 뼈의 날카로운 끝이 바로 밑에 있는 심장과 폐에 손상을 준다. 이런 종류의 손상은 폐나 심장출혈과 같은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가 있다.

그리고 서 있는 상대방의 목에 두발을 걸고 물레방아처럼 돌려서 상대방을 머리로부터 떨어지게 하는 기술은 더욱 위협적이다. 만약 그렇게 떨어진다면 뇌손상은 물론이고 목뼈의 부상으로 하반신 마비를 피할 수가 없다. 레스링 경기가 난폭하게 보이는 것은 이러한 여러형태의 공격들이 아주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경기중 실제 이런 손상은 생기지 않는다. 그것은 선수들이 고도의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관객들에게는 실제처럼 보이게 하면서 상대방을 공격하는 것이나 충격을 흡수하여 몸은 다치지 않게 하면서도 긴박감을 느끼게 하는 것은 강도 높은 훈련과 연습이 있어야 한다.

일부 관객은 이를 두고 서로 짜고 하는 경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짜고 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상대방 선수에게 큰 손상을 주지 않으면서 경기를 재미있게 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 불가피한 일이다. 프로레스링은 그야말로 프로들이 하는 경기이다. 우리는 프로레스링 경기에서 난폭함을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 선수들의 고도의 기술에 박수를 치러 가는 것이다.

이 영화는 프로레스링과 같은 일상에서의 탈출도 준비와 훈련이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것을 또 다른 메시지로 우리에게 전달하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김형규(고려대의대 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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