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굳이 세밀화인가.
"요즘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상상그리기'라는 숙제도 곧잘 내주던데 아이들이 보지 않은 것을 어떻게 상상할까? 사물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관찰력이 상상력도 풍부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꼭 세밀화만이 아이들 보기에 좋다는 의미는 물론 아니다. 다만 외국 어린이 서적에 비해 한국에는 너무 이런 책이 없기 때문에 세밀화에 주력하는 것일 뿐이다."
―계절 그림책에 그려진 농촌마을들이 아직도 이 모습 그대로 남아있나.
"물론이다. 봄편 '우리 순이 어디가니'는 충북 제천, 여름편 '심심해서 그랬어'는 경북 청송, 동물주인공이 등장하는 겨울편 '우리끼리 가자'의 산 능선은 북한산과 안양 청계산 자락의 모습이다. 자연과 어우러진 농촌풍광이 아직 우리 나라 곳곳에 남아있다."
―왜 제작기간이 길어졌나?
"예를들어 봄편은 완성까지 3년이 걸렸다. 봄이 너무 짧아 한해에 다 스케치를 못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최근 충북 괴산으로 집을 옮기느라 분주하다. 자신이 그린 계절그림책 속의 한 마을같은 이 곳에서 사계절을 주의깊게 살펴보고 싶은 욕심에서다. 세밀화의 스케치를 위해 모델로 포착한 아이를 사진 찍고 긴 시간 관찰하다 때로 '유괴범'이라는 오해를 사기도 했다. 한국호랑이를 세밀화로 그릴 때는 갓 돌 지난 딸을 유모차에 태운 채 하루종일 호랑이 우리 앞을 지키느라 아이 혼자 지쳐 자다깨다를 반복한 기억도 있다.
―앞으로는 무엇을 그릴 것인가?
"한국의 365일을 세밀화로 남기고 싶다.지금까지 그린 세밀화는 기회만 된다면 자연사박물관에 기증할 생각이다."
화가는 경기 연천 출신으로 홍익대 서양화과를 졸업했다.
<정은령기자>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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