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세대나 시민운동가의 건전한 정치 참여를 명분으로 이들에게 성공 신화를 부여하고 우리 사회의 소금처럼 추켜세웠던 주체가 언론이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언론에 의해 만들어진 386 정치인과 한 시민운동가가 기대를 저버리고 일을 저질렀다. 모두 몸가짐을 조심하지 못했다는 사실 앞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문제는 그 실수의 시작부터 언론이 가한 메스와 비판의 강도다. 동아일보 5월 29일자 A1면 ‘그들은 도대체 왜’와 A31면 ‘도덕성 타격 시민단체 기로에’는 비판의 강도가 가장 센 기사였다고 생각된다.
사회의 위선을 고발하고 지도층의 부도덕성을 질타하는 것은 언론의 사명임에 틀림없다. 또한 이번 사건을 우리 사회의 도덕성 위기에 대한 경고의 계기로 삼으려고 했을 언론의 의도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위에 지적한 두 기사에는 논리적으로 무리한 부분이 있었다는 생각이다. A1면 기사에 ‘이들에게 이미지 정치와 매명(賣名)의 징후를 알아채지 못하고 박수만 보내는 시민들도 스스로 책임을 돌이켜 보아야 한다’고 한 부분과 장원씨 사건이 시민운동을 기로로 몰고 간 것처럼 비약한 부분이다.
386 정치인들의 술판 실수가 설령 ‘매명’과 ‘이미지 정치’의 결과였다고 해도 그들에게 매명과 이미지 정치의 기회와 계기를 만들어 준 것은 언론이었지, 시민이었는가.
또 보기에 따라서는 한 개인의 잘못을 가지고 시민단체들이 자성하고 있고 자성하는 게 당연하다는 내용의 A31면 기사는 다소 비약된 것이 아니었나 싶다.
같은 날짜의 사설 ‘도덕성 위기 어디서 오나’는 사안의 중심에 서서 무게와 균형을 잡아 주는데 도움이 됐다고 평가할 만하다.
문화면이 얼마 전부터 대중과 고급 독자의 경계를 넘는 변모를 거듭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5월 29자 A18면 e북은 ‘있다’‘없다’ 논쟁 기사와 5월 30일자 A15면 ‘철학박사 김형찬기자의 밀레니엄 담론’, 5월 31일자 A15면 ‘오주석의 옛 그림읽기’, 6월 1일자 A19면 유윤종기자의 ‘클래식 깊이 듣기’, 6월 3일자 B2면 정은령기자의 ‘책·사람·세상’ 등의 시리즈물은 급변하는 사회 환경을 각개 문화 장르의 관점에서 전문기자들 특유의 키워드를 가지고 읽어주는 재미가 독특하다.
흔히 문화 행사 보도는 일방향적으로 소개하는데 그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새로운 시리즈물들은 사회적 주석과 조망을 통해 현재의 대중 수준에 맞춰 나가는 것이 아니라 될 수 있는 한 대중의 문화적 눈높이를 끌어올리며 품격도 잃지 않고 독자의 폭도 넓혀 나가는 변화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기대된다.
홍사종(숙명여대 교수·문화관광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