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크루그먼 칼럼]아르헨의 통화정책 실패?

  • 입력 2000년 6월 4일 20시 04분


현재 심각한 경기침체와 높은 실업률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아르헨티나를 보면 통화정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1930년대까지만 해도 경기침체는 불가피하고 경기순환 과정에서 없어서는 안될 현상이라는 인식이 확산돼 있었다. 지나친 경기호황 뒤에 경제 전반을 깨끗하게 정리해주는 일종의 정화현상으로서 말이다.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통화공급을 자제하고 긴축재정정책을 처방하는 것이며 시간이 흐르면 침체된 경제는 스스로 되살아난다는 것.

▼달러貨 보유고에 쌓아놓아▼

그러나 경기침체의 결과로 대규모 실업사태가 발생하자 영국의 저명한 경제학자인 케인스를 비롯한 일부 경제학자들은 경기침체는 건전하지도 불가피하지도 않은 현상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경기침체는 오히려 대부분의 사람들이 소비를 하는 대신 돈을 저축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질병이라는 것. 케인스는 따라서 정부가 돈을 더 찍어 공급해 경제가 되살아나도록 자극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는 정반대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1991년 아르헨티나는 수십년간 무책임한 정책으로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페소화를 달러화에 고정시키고 달러화를 보유고에 쌓아놓았다. 사실상 통화정책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인플레 끝나자 고실업 닥쳐▼

그 후 몇년 동안 아르헨티나는 살인적인 인플레가 끝난데다 경제의 발목을 붙잡던 많은 장애물들이 제거됨에 따라 경제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지난해 브라질 통화가 비틀거릴 때 월스트리트저널에 실린 한 기고문은 브라질이 아르헨티나를 모델로 삼아야 한다며 “인플레정책으로 경기를 살리려 하지도 말고 자국통화 평가절하를 통해 수출경쟁력을 개선하려 해서도 안된다”고 충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가 페소화를 달러에 고정시킴으로써 인플레를 잡았을지는 몰라도 그 결과 엄청난 고실업 문제에 시달려야 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소비를 억제하고 세금을 올려 균형예산을 이루게 되면 아르헨티나 경제에 대한 국내외 신뢰를 회복해 경기가 회복될 것이라고 믿어왔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나타났다. 소득이 줄어든 소비자들은 쓸 돈이 없어졌고 결국은 경기회복을 지연시켜온 것이다.

▼중남미 국가중 경제 최악▼

그동안 브라질은 평가절하의 효과가 나타나며 경제가 되살아났고 칠레와 멕시코는 변동환율제 덕분에 경기가 회복됐다.

이제 아르헨티나는 중남미 주요 국가 가운데 최악의 상황에 처한 나라가 됐다.

나는 아르헨티나가 페소화를 당장 평가절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아마도 당분간은 아르헨티나 경제가 살아나기 힘들 것이다. 다만 케인스의 충고를 받아들여 적절한 통화공급과 통화정책을 구사하기를 바란다.

<정리〓신치영기자>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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