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5개월간 온라인을 통해서만 뉴스를 접한 결과는 놀라운 것이었다. 지난 몇 년 동안 인터넷과 뉴미디어의 중요성을 역설했던 내가 종이에 인쇄된 신문을 접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커다란 좌절감을 느꼈던 것이다. 나는 신문이 그리웠다. 신문의 바삭바삭한 느낌도 그리웠고, 내 방의 커다란 가죽의자에 앉아 신문을 읽으면서 느꼈던 기쁨과 편안함도 그리웠다. 화장실에 있을 때에도 지금 내 손에 신문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어디서든 편안하게 읽어▼
게다가, 정보의 획득이라는 측면에서는 별로 불편한 것이 없었는데도 나는 뭔가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우선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발행되는 신문을 온라인으로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말로 지역뉴스를 읽었다는 느낌을 받을 수가 없었다. 똑같은 크기의 사이트 링크 표시만 나타나는 컴퓨터 스크린에서는 어떤 것이 중요한 뉴스인지, 또 어떤 것이 지역뉴스이고 어떤 것이 세계뉴스인지를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둘째로 나는 한가하게 신문을 넘기다가 우연히 재미있고 매혹적인 기사를 만나는 기쁨을 누릴 수 없었다. 나는 컴퓨터 스크린에서 필요한 정보만을 꺼내본 후 재빨리 사이트를 벗어나곤 했다. 인터넷으로 뉴스를 보면서 항상 내가 서두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셋째, 신문과 함께 배달되는 할인쿠폰과 대형 세일광고를 접할 수가 없었다. 쿠폰은 일종의 현금과도 같으며, 광고는 기사와 마찬가지로 뉴스를 담고 있다. 그러나 인터넷의 배너 광고 중에서 내가 마우스로 클릭을 할 만큼 흥미 있는 것을 발견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나는 바로 이 이유때문에라도 신문이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넷째, 온라인 뉴스를 읽는 것은 불편한 일이었다. 온라인 뉴스를 읽으려면 우선 컴퓨터 앞에 앉아 인터넷에 접속을 한 다음 마우스를 계속 움직여야 한다. 그리고 그 동안 내내 자리를 뜰 수가 없다. 신문을 읽을 때는 잠시 신문을 내려놓고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꺼내 올 수도 있다. 또한 신문기사를 잘라 벽에 붙여놓을 수도 있다.
▼온라인 뉴스검색 불편▼
다섯째, 내가 신문을 읽으며 자란 세대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신문에서 읽은 기사가 더 기억에 남았다. 이미 날짜가 지난 신문이 다른 용도로 쓰이지만 않았다면 우리는 전에 보았던 기사를 다시 찾아서 읽을 수 있다. 나는 인터넷에서 발견한 재미있는 기사들에 북마크를 해두었지만, 신문더미를 뒤지는 것만큼 쉽게 원하는 기사를 찾을 수 없었다.
나는 6월 1일부터 옛날에 보던 신문들을 다시 구독하기 시작했다. 해가 뜰 무렵 새소리를 들으며 밖으로 나가서 신문을 집어드는 순간 신문에 코를 박고 깊이 숨을 들이쉴 것이다. 운이 좋다면, 내 콧잔등에 그 친숙한 검은 잉크자국이 남을지도 모를 일이다.
▽필자〓마이크 웬드랜드(NBC TV 인터넷 담당기자)
(http://www.nytimes.com/library/tech/00/05/circuits/articles/25pape.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