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완배/'폭행 투캅스'와 경찰명예

  • 입력 2000년 6월 6일 19시 14분


본보 3일자에 ‘술에 취한 두 경찰관이 시민을 때려 전치 4주의 상처를 입혔다’는 내용의 기사가 보도된 후 기자는 ‘경찰의 명예’를 지키고 싶어하는, 하지만 그 표현방법은 극명하게 다른 두 경찰관과 접촉했다.

자신을 ‘지방에서 근무하는 경찰관 김모’라고 밝힌 한 경찰관은 기자에게 보낸 E메일에서 “일부 몰지각한 경찰관 때문에 성실하게 살아가는 전체 경찰의 명예가 더럽혀지고 사기가 떨어진다”며 “문제 있는 경찰관을 철저히 가려내는 자정노력을 통해 경찰이 스스로 명예를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경찰관은 또 “어린 내 아이가 자라 이런 내용의 기사를 읽는다면 경찰인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하겠느냐”며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했다.

반면 이 사건 수사를 담당했던 서울 노원경찰서의 한 간부는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전혀 다른 내용으로 ‘경찰의 명예’를 이야기했다. 요지는 “별일도 아닌 걸 가지고 기사를 써 경찰의 명예를 깎아내렸다”는 조의 항의였다. 이 간부는 전화통화 내내 경찰관의 나쁜 행동이 ‘보도돼’ 경찰의 명예가 실추됐다는 점만을 부각시키려고 했다.

또 이 간부는 병원에 입원한 피해자에 대해 “갈비뼈 부러진 게 뭐 그리 큰 상처라고 호들갑이냐. 갈비뼈는 가만히 누워있으면 쉽게 다시 붙는다”거나 “내가 보기에는 살짝 긁혔던데 무슨 얼굴 함몰이냐”는 등 상식 이하의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병원에 누워있는 시민의 고통 따위의 ‘작은 일’을 어찌 ‘전체 경찰의 명예’와 같은 중요한 일에 비교하겠느냐는 듯한 태도였다.

잘못은 누구나 저지를 수 있고 또 어느 조직에서도 발생할 수 있지만 그 잘못에서 반성과 교훈을 얻지 못하면 퇴보만 있을 뿐이다.

어떤 사고방식이 대다수 경찰관의 명예를 진정으로 지키는 것인지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이완배<사회부>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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