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생사의 고비를 넘어 국내에 정착한 탈북자 유광일(柳光日·30)씨. 평양철도대학을 졸업한 그는 남북정상회담의 후속조치로 우선 경의선 복원이 추진되고 있어 감회가 남다르다.
유씨는 13∼15일 평양에서 진행된 남북정상회담을 지켜보면서 내내 큰 누나 가족들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렸다고 말했다. 19921003특히 평양음악무용대학을 졸업하고 피바다예술단원으로 활약할 정도로 뛰어난 예술적 소질을 지녔던 누나를 빼닮아 12세의 어린 나이로 98년 평양음악무용대학 조기반에 입학한 조카가 못 견디게 보고 싶었다.
온 가족이 탈북을 결정하고 98년 6월 중국 여행길에 올랐을 때 철도방송위원회 기자였던 큰 누나와 정치국 산하 163호 병원 원장이었던 매형은 한사코 동행을 거부했다. 유씨는 “지금 생각하면 같이 나오지 못한 게 안타깝기 이를 데 없다”고 말하면서 “남북정상회담에서 보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변화에 놀랐다”고 말했다.
사실 그의 집안은 80년대 중반 작은 아버지가 김정일위원장을 비난했다는 이유로 풍비박산 났다. 당시 평양음악무용대학 작곡과 교수였던 작은 아버지 가족은 정치범 수용소에 수용됐고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았던 아버지도 평생 직장이었던 신문사에서 쫓겨나다시피 물러나야 했다. 그에게 김정일위원장은 자기중심적이고 독단적인 인물로만 기억됐다.
그런데 이번 정상회담에서 김위원장은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겠다’는 자세를 견지하는 합리적인 사람으로 바뀐 것 같다는 게 유씨의 평가. 그는 “이산가족과 탈북자의 슬픔을 거론하는 김위원장의 모습에서 평양의 누나 가족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올해 초 한국철도대학 전기제어과에 특례입학한 유씨는 “북한과 달리 남한에선 철도가 정시에 출발 도착하는데다 실내도 쾌적해서 좋다”며 “남북간 철도가 이어지면 서울에서 평양까지 달리게 될 열차를 직접 손보는 철도엔지니어가 돼 평양을 방문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황재성기자>jsonh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