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회에서 집을 좋게 손질하는 모습이나 그 집에서 살 가족을 선정하는 과정을 보면서 경제발전의 본질 또는 척도 등에 대해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짐작컨대 실제로 ‘1900년의 집’에 나오는 집에서 1900년에 살던 가정은 연간 소득이 물가수준을 감안해 보더라도 지금 돈가치로 2만∼3만달러 정도였을 것이다.
지금은 이 정도 소득으로는 ‘1900년의 집’처럼 좋은 집에 살 수도 없고 하녀를 부릴 수도 없다. 그러나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가정은 그 정도 소득이면 이러한 것들을 누릴 수 있었다.
생활의 편리함으로 치자면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가정은 오늘날의 가정에 비할 수가 없을 것이다. 지금은 전기도 마음대로 쓸 수 있고 뜨거운 물이 금방 나온다. TV와 라디오도 있고돌림병으로 가족을 잃을 염려도 없다.
물질적인 측면만 생각한다면 누구든 1900년의 중산층으로 살기보다는 오늘날의 저소득층으로 살고 싶을 것이다. 사회적인 지위가 어느 정도 되느냐는 또 다른 문제일 수 있지만 여기서는 비켜가기로 하자.
나는 좀 삐딱한 관점에서 미니시리즈 ‘1900년의 집’을 봤다. 20세기에 우리가 얼마나 큰 발전을 했는지보다 우리가 앞으로 얼마나 더 발전할 수 있겠는지를 생각해봤다. 이 점에 대해서 나는 좀 회의적이다.
요즘 경제학자 엔지니어 미래학자들 사이에 ‘우리가 진정으로 기술진보의 황금기에 살고 있는가’에 대해 논쟁이 뜨겁다. 인터넷이나 휴대전화 등 디지털 기술이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엄청나게 발전할 것이라는 데에는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기술발전으로 우리의 전반적인 생활수준은 얼마나 더 좋아질까.
어떤 사람들은 디지털시대의 개막이 산업혁명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또 한편 경제학자들과 역사학자들은 “디지털기술은 19세기와 20세기에 이뤄진 기술진보를 변형한 것에 불과하며 특별나다고 할 만한 발전이 아니다”고 말한다.
클린턴 대통령 재선 이후 미국이 누려온 경제발전 혜택을 생각해보면 전자의 해석이 더 그럴듯하다. 하지만 ‘1900년의 집’을 보면 후자의 논리가 더 일리 있는 것 같다.
‘디지털 혁명은 별것 아니다’는 입장의 대표 주자인 미 노스웨스턴대 로버트 고든 교수는 “전기 내연기관 근대화학 대중매체 상하수도설비 등 다섯 가지 주요한 기술혁명은 어느 것을 막론하고 디지털혁명보다 더 중요한 발전이었다”고 주장했다.
미니시리즈 ‘1900년의 집’이 생생하게 묘사하는 것처럼 19세기에 사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고든 교수의 말에 수긍이 갈 것이다. 만약 내가 20세기에 이뤄진 기술개발의 혜택을 더 이상 누리지 못하게 된다면…. 전기나 편리한 세제, 따끈한 샤워, TV 등이 얼마나 아쉬울 것인가.
<정리〓신치영기자>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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