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갓난 아기가 숨졌다

  • 입력 2000년 6월 20일 19시 00분


병원이 문을 닫을 것이란 소리에 분만촉진제를 맞고 출산예정일보다 일주일 먼저 태어난 신생아가 하루 만에 숨지는 일이 엊그제 인천에서 발생했다. 병원 폐업사태가 없어 예정일자에 정상분만을 했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개연성이 높았던 사고라는 점에서 숨진 아기는 이번 ‘의료대란’의 첫 희생자가 된 셈이다.

대구에서는 종합병원의 폐업으로 병원 3군데를 전전하던 70대 노인이 제때 진료를 받지 못하고 사망했다는 보도다. 어제부터 본격 시작된 의사들의 전국적인 집단폐업으로 환자와 그 가족들이 겪고 있는 고통과 피해 사례는 일일이 열거하기 어렵다. 어디서 또 무슨 끔찍한 일이 벌어질지 두려울 지경이다.

우리는 다시 한번 강력히 촉구한다. 의사들은 당장 병원문을 열고 환자들을 진료해야 한다. 예정됐던 수술을 연기하거나 취소하고 입원환자들을 강제로 퇴원시키면서 ‘의사의 진료권’을 내세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도대체 국민의 생명과 고통을 외면하면서 외치는 ‘국민건강’이 무슨 설득력을 가질 수 있겠는가.

우리는 현 의약분업 시행안에 대한 의사들의 불만 및 주장에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한다. 그렇더라도 그것이 일단 의사와 약사, 시민단체 간의 합의로 이루어졌던 만큼 그것을 고치고 바로잡는 데도 상대와 합의과정을 밟는 것이 순리다. 집단폐업을 무기로 협상의 여지마저 부정하는 극단적인 대응은 합리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정부의 대응도 유감이다. 정부는 결과적으로 약의 오남용을 방지한다는 명분만 앞세웠을 뿐 성공적 의약분업의 전제조건인 의약간 이해조정에 실패하면서 병원-약국간 분업시스템, 약품의 공급 및 배송체계 등 분업준비에 상당한 차질을 빚었다. 더구나 어제는 약사측마저 정부가 의사측을 배려하기 위해 내놓은 ‘주사제 의약분업 제외’에 반발하면서 분업불참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의약계와 정부는 한시라도 빨리 무릎을 맞대야 한다. 한나라당에서는 7월1일부터는 시범지역에서만 분업을 실시하고 전면실시는 보완책을 마련해 내년 초부터 하자는 타협안을 냈다고 한다. 이런 안을 포함해서 여러 안을 놓고 서로간의 이해를 조정해 나가면 ‘차선의 대책’을 찾는 것이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지금의 의료대란은 당장 끝내야 한다. 국민건강과 생명을 볼모로 한 힘겨루기는 결국 공동체 모두의 붕괴로 이어지는 엄청난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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