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존]'배창호의 영화작업은 계속된다'

  • 입력 2000년 6월 23일 11시 20분


영화 <정>의 지난 주말 이틀간 흥행성적은 한마디로 '처절하다'. 그래서 안타깝고 화가 치민다는 사람이 많다. 이 영화의 홍보를 맡았던 '영화인'의 한 관계자는 "<정> 때문에 요즘 늘 마음이 아프다"고 울먹일 정도다.

<정>은 지난 주말 이틀간 서울 관객이 2천명을 밑돌았다. <미션 임파서블2>가 20만명을 넘기며 시내 곳곳 극장에서 난리를 칠 때였다. 이제 정말 배창호 감독의 영광은 끝이 났는가. 그도 이제 전설적인 인물이 돼버리고 마는 것인가. 개봉 후 그와의 연락은 번번이 실패했다. 흥행결과에 실망해 잠시 '잠적'(?)한 것이 아닐까 하는 섣부른 짐작들도 있었다.

어렵게 접촉에 성공한 후 들은 그의 설명에 따르면 개봉 후 오히려 더 바빴다고 한다. 인터뷰가 쇄도했기 때문이다. 흥행결과와는 별도로 평단과 저널의 반응은 매우 호의적이다. 며칠 전에는 어느 신문사의 요청에 따라 <고래사냥>의 촬영지였던 강원도 해변을 다녀 오기도 했다. 그는 여전히 패기에 넘쳐 있다. 영화적 열정과 앞으로의 인생 계획에 몰두해 있는 것 같다. 배창호의 영화인생이 끝났다고? 그를 만나면 그런 생각이 달라진다.

▼이건 명백히 배급의 실패다. 극장을 전국에서 몇 개 잡았나.

-서울 5개, 부산 1개 통틀어 6개다. 대부분 2백석 규모의 소극장이다. 모두들 참담한 흥행실패라고 얘기하는데,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저조하긴 하지. 하지만 하루에 천명정도씩은 든 것 아닌가? 처음부터 흥행을 생각하고 만든 작품은 아니다. 요즘엔 영화 선전비(광고비)가 너무 많이 들어서 그 점에서도 기대를 하지 않았다. 다만 사람들이 많이 보고 입소문이 나길 바랐다. 그런데 지금 상황으로는 입소문이 퍼지기도 전에 간판을 내리게 생겼다. 그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

▼기존의 전문 배급망을 활용할 수는 없었나? 시네마서비스나 CJ급은 아니더라도 신도나 한맥같은 중간 규모 배급업자의 경우 타협점이 있었을 듯 싶은데.

-이번 영화의 경우 그런 식의 배급이 맞지 않는다. 결국은 마찬가지였을 확률이 높다. <정>같은 경우는 일본식의 단관개봉, 그러니까 한 극장에서 2~3개월 정도 장기개봉한 후 다른 극장에서 또 2~3개월 하는 식의 장기전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는 그런 식의 배급구조가 짜여 있지 않다. 한때 우리도 그럴 가능성이 없진 않았다. 동숭아트센터나 종로 코아 아트홀이 아트영화 전용관으로 좀 활발하게 움직였을 때. 그러나 지금은 그나마도 없다. 일본의 <우나기>가 왜 국내에서 흥행에 실패했는지 아는가. <우나기>는 일본 개봉당시 신주쿠 한 극장에서 무려 6개월간 상영되며 관객들을 끈기있게 기다린 작품이다. 그것을 우리나라에서는 무리하게 15개 극장에 펼쳐 놓았다. <우나기>나 내 영화 <정>이나 결코 호흡이 빠른 영화는 아니다.

▼이번 영화를 두고 배창호 영화의 총결산이란 소리를 자주 한다. 마치 영화 인생 끝 마무리같은 느낌을 준다.

-말도 안되는 소리란 건 묻는 사람이 더 잘 알겠지. 총결산이란 말을 과대포장하지 마라. 지금까지 15편의 영화를 찍었고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그 기간동안 내가 체득했던 연출의 노하우라든가 현장관리 능력 등을 이번 영화에 쏟아 부었다는 얘기일 뿐이다.

▼주변에 배감독을 두고 안타까워 하는 사람이 많다. 시스템, 곧 주류 영화권과 타협하며 일을 할 수도 있을텐데 하는 생각들인 것 같다.

-글쎄… 이런 얘기가 나올 때마다 계속 반복하는 얘기이기는 한데 난 항상 준비돼 있다는 거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지금 기존 시스템과 충돌하며 일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들을 배척하며 내 고집대로만 갈 생각도 없다. 다만 여러가지, 이를테면 캐스팅이라든가 창작 여건 같은 부분에 있어 보다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해준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왜 항상 그렇게 캐스팅에 애를 먹나.

-한마디로 얘기해서 요즘 활발하게 활동하는 스타급 연기자들 가운데 쓰고 싶은 배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한두 사람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들과는 늘 시간이 맞지 않는다. 너무들 몸을 사리고 영화에 대한 열정이나 자세가 돼있지 않다는 느낌을 받는다. 스타 대접만 받으려고 하고 돈을 벌려는 생각뿐인 것 같다는 느낌을 주는 연기자들이 태반이다. 물론 개런티는 얼마든지 줘도 좋다. 그러나 그럴려면 그만한 값을 해야 한다. 그럴 만한 연기자들이 없다.

▼95년 <젊은 남자> 이후 5년간 세편의 영화를 찍었다. 개봉하느라 시간을 잡아먹어서 그렇지, 1년에 한편씩은 꾸준히 영화를 만들고 있는 셈이다. 다음 작품으로 <나의 사랑 아프리카>를 준비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언제 촬영에 들어갈 수 있을 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난 언제나 준비가 끝나 있다는 거다. <나의 사랑 아프리카>는 예산도 적잖게 들어가야 하고, 그렇다면 적당한 투자자가 나서야 하는데, 현재까지는 그런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사실 22년전 내가 아프리카 케냐에서 현대종합상사 지사장으로 근무할 때부터 생각했던 작품이다. 7년전에는 아예 사전 로케까지 갔다 왔다. 오래 전부터 하고 싶었던, 그리고 준비해 온 작품이다. 작년 부산영화제 PPP(Pusan Promotion Plan)로부터 천만원의 제작 지원금을 받기도 했다.

▼어떤 내용의 작품인가.

-이번 영화 <정>과 분위기에 있어서는 그리 크게 다른 작품이 아니다. 사랑 얘기다. 케냐에서 올 로케로 촬영할 예정이다.

<오동진(ohdjin@film2.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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