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티아 센 교수는 보석처럼 영롱하면서도 그윽한 눈빛을 지닌 분이다. 하버드대에서 박사과정을 밟던 시절 내가 사감으로 있던 기숙사인 엘리엇 하우스에는 금요일 오후마다 주로 인문사회 분야의 교수들이 모여 셰리주를 즐기는 모임이 있었다. 센 교수는 철학자 콰인과 함께 그 모임에 늘 단골로 오시던 분들 중 내 기억세계에 특별히 깊은 인상을 남긴 분이다. 나는 센 교수를 바라보며 간디가 살아 있으면 저런 미소를 지니지 않았을까 생각하곤 했다.
일전에 그가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마치 내가 그 상을 받기라도 한 듯 한참동안 흥분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그가 많은 이들로부터 위대한 학자로 추앙받는다는 것은 익히 잘 알고 있었지만 그가 하는 경제학이 이른바 ‘잘 나가는’ 분야가 아니었기 때문에 노벨상이 그에게 돌아 오리라곤 기대하지 않았었다. 스웨덴 한림원이 소문처럼 그렇게 썩어빠진 것은 아닌 모양이다.
‘불평등의 재검토’는 경제학 책이 아니라 사실 사상서이다. 일반인을 위해 썼다고는 하나 아무나 덥석 읽기에는 조금 어려운 책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센의 정신세계에 대한 입문서로 이보다 더 훌륭한 책은 없다. 인권주의자의 눈에는 아직도 멀었겠지만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는 잘못된 평등의 개념이 판을 치고 있다. ‘무엇에 대한 평등인가’는 묻지 않고 무조건 평등만을 요구한다. 출신 성분에 따라 모든 사람을 양반과 상놈으로 양분했던 무지몽매한 우리가 불과 몇십 년만에 모든 걸 나눠먹어야 한다며 스스로 파놓은 수렁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라는 호소는 우리의 바람이지 현실이 아니다. 일란성 쌍둥이들을 제외하고는 우린 모두 결코 평등하지 않은 유전자 구성을 갖고 태어난다. 그래서 어떤 이는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는 지식의 말씀을, 또 어떤 이는 병 고치는 은사를 받고 태어난다. 로마서 12장 6절에는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다” 하였다. 인간은 결코 평등하게 창조되지 않았다. 누구나 은혜로 거듭 날 수 있으며 법 앞에 평등하도록 노력할 뿐이다.
센은 불평등의 다원성을 인식하고 ‘성취할 수 있는 자유’와 그 자유의 표상인 ‘능력’을 보장해야 비로소 평등을 이룰 수 있다고 설명한다. 선진국을 향한 도약과 민족통일을 한꺼번에 이루려는 우리 사회가 반드시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이 책에 들어 있다.
최재천(서울대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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