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뜩 찌푸린 하늘에서 함박눈이 펑펑 내린다. 때맞춰 울려 퍼지는 교내방송.
“전교생은 운동생으로 모이세요.”
교실마다 학생들의 함성이 터진다.
“야! 토끼 사냥이다.”
책장을 덮고 운동장으로 뛰쳐나가는 학생들.
이런 학교가 있다. 경남 거창의 거창고등학교.
이 책엔 거창고 학생들의 순수하고 열정적인 일상이 채곡채곡 담겨있다. 작가인 저자가 학생들과 1년간 함께 생활하면서 바라본 거창고의 모습.
거창고의 특징은 전인교육, 자율교육.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4월말의 봄예술축제다. 3일간에 걸쳐 스포츠 전시 공연 가장행렬 방송행사 등 신나는 축제가 펼쳐진다. 신나는 축제도 축제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내용과 성격은 물론 모든 준비를 학생들 스스로 한다는 점, 그리고 소재와 내용에 금기가 전혀 없다는 점. 4·19, 5·18도 거창인들에겐 중요한 소재다. 이 책에 그 거창인 축제의 단면 단면이 스냅사진처럼 포착되어 있다.
어찌 보면 지극히 평범해보이는 것이지만 실천하기는 어려운 교육 현실. 하지만 거창고는 그 덕분에 매년 4년제 대학 진학률이 90% 이상을 자랑한다. 명문대 진학도 수준급이다. 전인교육 자율교육의 힘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 학교의 강당 뒤편에 걸린 ‘직업선택의 원칙’이 가슴 찡하게 다가온다. 월급이 적은 쪽을 선택하라,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황무지를 택하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사회적 존경 같은 것을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한 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책 말미에 전현직 거창고등학교 교장이 말하는 거창고의 교육 이념, 거창고 교사와 학생 가족들이 주고 받은 편지 글도 함께 실었다. 400쪽, 9500원.
<이광표기자>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