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결국 '겉핥기 청문회'인가

  • 입력 2000년 7월 3일 19시 01분


대법관 후보 6명에 대한 국회의 인사청문회가 ‘국민적 검증’이라는 청문회 도입 취지를 제대로 살릴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6, 7일 이틀간 진행될 청문회를 앞두고 그동안 정치권이 보여준 행태를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다. 청문회를 통해 대법관 후보를 검증하기는커녕 국회에 대한 국민의 불신만 더 깊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여야는 청문특위 위원장 자리다툼을 벌이느라 그러잖아도 짧은 10일간의 준비 기간을 허송했고 결국 증인과 참고인 출석요구 시한을 넘겨버렸다. 감투 다툼에 정신이 팔려 법이 부여한 권능마저 행사하지 못하는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런 판이니 체계적으로 자료 제출을 요구했을 리 없고, 자료가 와도 시간에 쫓겨 제대로 검토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국무총리 인사청문회가 준비 부족으로 통과의례에 그쳤다는 평가를 받은 만큼 이번 대법관 청문회는 철저한 준비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했으나 국회는 준비 과정에서 이같은 국민의 요구를 저버렸다.

본란에서 이미 강조했듯이 대법관 청문회는 정치적인 자리인 국무총리의 경우와는 또 다른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대법관의 핵심 자질은 정치 권력으로부터 사법권의 독립을 지키려는 소신이며 청문회는 무엇보다 이를 확인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게 우리의 생각이다.

줄곧 판결로만 말을 해온, 그래서 베일에 싸였던 대법관 후보자들이 공개된 장소에서 능력과 인격을 검증받는 것은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얻는 절차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번 청문회에선 대법관 후보자의 판결 경향과 법철학 문제까지 심도있게 다뤄야 하고 이를 위해 청문특위 위원들은 지금이라도 판결문을 꼼꼼하게 살펴보는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도 정치권 일각에선 청문회의 의미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듯한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으니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여당의 한 중진이 “총선 재검표때 대법관들이 불성실한 태도를 보였다”고 말한 것은 이번 청문회를 사법부 견제 기회로 이용하려 한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정치권의 준비가 이처럼 허술하고, 일부 의원이긴 하겠지만 마음가짐도 잘못된 것을 보면 이번 청문회가 겉핥기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대법관 청문회만큼은 정도를 벗어나면 안된다. 거듭 강조하지만 대법관 청문회는 사법부의 권위와 독립을 보장하기 위한 절차여야 한다.

국민과 시민단체의 검증대상에는 대법관 후보자는 물론 질문하는 국회의원도 포함돼 있음을 의원들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