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송상근/국민 '눈치' 먼저 보라

  • 입력 2000년 7월 3일 19시 30분


정부에 불리하거나 정부 입장과 배치되는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면 당국자들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보도 경위와 유출자 색출’이다. 누가 문제의 내용을 언론에 흘렸는지 찾아내는데 혈안이 된다.

보건사회연구원이 자체 월간지 ‘보건복지포럼’ 6월호에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 등 공적연금의 재정 부실 문제를 다룬 논문이 실리게 되자 인쇄를 중단시키고, 이런 사실이 언론에 보도된 뒤 보이는 행태도 이와 다르지 않다.

정경배(鄭敬培)원장은 3일 오전 “이런 민감한 내용을 누가 언론에 유출시켰느냐”며 발설자 색출 작업을 하면서 이 사안에 대해 말을 아끼도록 연구원 관계자들에게 지시했다.

정원장은 오후엔 직접 기자실을 찾아 “논문 내용이 잘못된 가정을 근거로 해서 쓰여졌기 때문에 일단 6월호 발행을 미루고 7월호와 합본키로 했다”고 해명했다. 그는 더 나아가 “연구원에 나를 음해하는 세력이 있다”며 공격의 화살을 특정인에게 돌리기도 했다.

이런 폐쇄성은 보사연에만 해당되는 문제는 아니다. 정부 정책과 조금이라도 방향이 다르거나 비판적인 내용이라는 이유로 연구 성과를 덮어두고 외면하는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한국은행과 민간 연구기관들이 97년말 외환 위기 가능성을 여러 차례 경고했지만 정부 고위 관계자들은 “한국 경제는 펀더멘털(기초)이 튼튼하므로 문제가 없다”며 계속 묵살했다. 이러한 결과의 대가는 온 국민을 고통 속에 몰아넣은 환란이었다.물론

연구 결과가 현실과 동떨어질 수도 있다. 이런 부분은 정책 담당자들이 가려서 받아들이면 된다. 하지만 정부 시책과 다르다, 비판적이다, 고위층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연구 성과 자체를 덮으려는 자세는 곤란하다. 논란의 소지가 많은 사안일수록 다양한 입장과 시각에서 논의해야 합리적인 대안을 찾을 수 있지 않겠는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기관이라면 정권이나 장관보다는 먼저 국민을 생각하는 독립적인 기구가 돼야 한다. 송상근<이슈부> songmoo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