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여름휴가 국도따라(1) 31번 국도 울산~봉화

  • 입력 2000년 7월 5일 18시 35분


《울산에서 중부전선의 휴전선(강원도 양구)까지. 31번 국도는 한반도를

남북으로 관통한다. 길이는 618.2㎞. 허다한 도로 중에서 이 길을 선택한

것은 소박함 때문이다. 해안과 내륙을 두루 섭렵하면서도 맑고 깨끗한 자연이

숨쉬는 오지만 골라 지난다. 올 여름 휴가때 한번 달려 보면 어떨지.

쉴 곳은 도로 주변 도처에 있다. ‘오지특급’ 31번 국도를

두차례 나누어 연재한다.》

◆울산~감포

울산. 왠지 답답한 느낌부터 든다. 공업단지라는 이미지 때문일까. 그러나 이 31번 국도의 시작점을 떠나는 순간, 편견이란 게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깨닫게 된다. 울산도 삼천리 금수강산의 일부인데 어찌 눈에 쏙 드는 해변 하나 없을까.

철교를 지나자마자 숲으로 뒤덮인 작은 고개를 오른다. 고갯마루에 서니 동해가 보인다. 정자동 해변이다. 31번 국도는 예서부터 구룡포항(포항시)까지 내내 바닷가에 놓여있다. 반달형 백사장은 넓기도 하지만 풍경도 아름답다.

해안도로에 접어드니 바다가 보이는 길가에 분위기 좋은 서구풍 레스토랑과 카페가 즐비하다. 모텔도 여러개다. 관성, 나아리해변을 지나면 월성 원자력발전소다. 발전소를 우회한 도로는 다시 해안으로 복귀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무대왕 수중왕릉 안내판이 보인다. 여기서부터는 경주시다. 송림과 하얀 백사장이 잘 어울리는 해변. 바다 한가운데 바위군을 형성한 대왕암은 해변에서 지척이다. 동해의 용왕이 되어 죽은 후에도 나라를 지키겠다는 문무왕의 결연한 의지가 지금도 느껴진다.

문무왕릉을 뒤로 하고 31번 국도를 따라 계속 북상하면 곧 감포다. 경주 관광객이 많이 찾아 오는 관광포구라서 포구 주변에는 회식당이 수도 없이 많다. 왁자지껄 시끄러운 횟집거리를 지나면 방파제다. 동해 푸른물이 한눈에 들어온다. 생소라를 불에 구우니 바다냄새가 솔솔 난다. 갓딴 미역을 줄에 널던 어민이 뚝 떼어 준 미역꼭지를 오물오물 씹으니 동해가 몽땅 입안에 든 듯 상큼하다.

◆감포~포항

구룡포로 가는 길에 오른편 차창 밖의 동해는 내내 벗이 되어준다. 잉크빛 바다와 파란 하늘, 그리고 싱그러운 해풍. 모처럼 찾은 동해바다 풍경은 한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구룡포항이다. 어업전진기지인 이곳에 가면 엄청나게 많은 어선에 놀란다. 한겨울에 구룡포는 잘 ‘익은’ 과메기와 대게찜이 별미다. 한여름에는 역시 생선회다. 40여년간 한자리에서 변치 않는 맛으로 술꾼들의 쓰린 속을 달래 주었던 함흥식당의 구룡포 복국. 최근 재건축사업으로 복국골목과 함께 사라졌다. 다시 시작한다지만 골목시절 맛이 되살아날지.

길은 구룡포에서 바다를 등지고 내륙을 향해 북진한다. 바다 건너 포항제철소가 보인다. 포항이다. 죽도어시장은 포항의 명물이니 꼭 둘러 보자. 시내를 빠져 나와 한티터널만 지나면 사과 복숭아 과수원으로 뒤덮인 포항시 죽장면 정라리다. 4, 5월 이 길은 분홍빛 복숭아꽃과 하얀 사과꽃으로 꽃대궐이 된다.

◆청송

청송군 현동면의 경계가 되는 꼭두방재(해발 445m)를 넘으면 청송땅(현동면). 포항에서 고개까지는 46㎞다. 고갯 마루에 ‘주왕산 34㎞, 달기약수탕 30㎞’라는 이정표가 서있다. 오지중에서도 오지 청송. 그만큼 자연은 제모습 그대로다. 여기서부터 끝머리인 양구까지 31번 국도는 오지만 지난다. 재넘어 재. 꼭두방재 넘으니 삼자현재(530m)다. 고갯길 아래 계곡에 청송자연휴양림이 있다. 빈병을 쌓아 만든 화단, 장송으로 지은 거대한 여치집 등 특이한 조형물이 길가에 즐비하다. 손님을 맞는 청송군의 정성이 느껴진다.

부남리를 지나면 곧 주왕산 국립공원 가는 길을 만난다. 주산지도 멀지 않다. 주왕산에 올라 내원동마을에서 하룻밤을 묵는다면 평생 잊지 못할 기억도 남길 수 있다. 전기 전화가 없는 오지마을이다. 달기약수터는 청송읍에서 가깝다. 약수로 끓여낸 옻닭으로 원기를 되찾자.

◆봉화

청송 영양을 지나 봉화로 가는 길은 한국의 대표적인 오지루트. 봄꽃이 한달 이상 늦게 피는 곳이니만큼 여름에도 시원한 고지대다. 현동(봉화군 소천면)을 지나 태백으로 가려면 청옥산(1276.5m) 능선의 넛재(896m)를 넘어야 한다. 재너머는 석포면. ‘하늘도 세 평, 꽃밭도 세 평’이라는 낙동강변 오지역 승부로 가는 유일한 길이 석포역 ㈜영풍 석포제련소(아연) 앞을 지난다. 거리는 11㎞. 비포장길로 다리를 4개나 넘나들며 가야 한다. 온동네 대추나무가 심겨진 비탈마을 승부리 아래 계곡에 흐르는 물은 낙동강 최상류. 너무 맑아 그대로 먹어도 될 정도다.

<글·사진〓조성하기자>summer@donga.com

◆대왕암-파도에 실려오는 '문무왕 호령'

문무왕(?∼681년)은 신라 제30대 왕으로 김유신의 외조카.

당나라의 소정방이 백제를 치러 오자 나당연합군을 결성,

백제를 멸망시키고 후에는 고구려까지 무너뜨렸다.

고구려 멸망후에는 반도에서 당군까지 내몰아 통일을 이룩했다. 수중왕릉인 대왕암은 ‘내가 죽으면 화장해서 동해에 묻어라.

그러면 용이 되어 왜구의 침략을 막아 내겠다”는

유언을 받들어 아들인 신문왕이 조성한 희귀한 수중무덤.

해안에서 200m 떨어진 바다의 암초에 사방으로

수로를 내어 파도에 밀려온 맑은 바닷물이 동쪽으로 들어와

서쪽으로 빠져나가도록 한 것도 특이하다. 유골은

물에 약간 잠긴 대왕암 한가운데 대석(臺石)아래

안치되어 있다. 근처의 감은사(터만 남음) 역시 문무왕이

생전에 불력을 빌려 왜구의 침입을 막겠다며 세운 절로

신문왕이 부왕의 뜻을 받들어 완공시켰다.

◆죽도어시장-싱싱한 즉석 회 맛 "끝내줘요"

밝은 대낮인데도 이 골목만은 어둡다.

그 어둠을 대낮처럼 밝히고 있는 것은 촉수 높은

백열등. 그 불빛 아래 놓인 좌판과 플라스틱물통

안에는 퍼덕대는 우럭 전어 등 생선이 가득하다.

10분은 걸어야 끝이 날 정도로 긴 이곳은

죽도어시장의 회골목. 횟집은 줄잡아 200여개나 된다.

즉석에서 잡은 고기를 회쳐 도시락에 담아주는데

그 솜씨가 가히 ‘예술’이다.

모두가 이른 아침 고깃배에서 받아 온 펄펄 뛰는 생선.

동해안 최대 상설어시장이라는 말에 모자람이 없다.

죽도어시장의 명물 중 하나는 동해산 ‘피데기오징어’.

70%정도만 건조시킨 말랑말랑한 오징어로

육질이 연하고 구울 때 식욕을 자극하는 독특한 냄새가 특징.

연중 판매 한다.

◆주왕산-내원동마을서 꿈같은 하룻밤

주왕산은 겉과 속의 모습이 전혀 다른 특이한 산이다. 능선 위로

불쑥 솟은 큰 바위도 특이하지만 그 바위 사이로 펼쳐지는

좁은 계곡의 풍광은 더 별나다. 산아래 대전사(사진)를 지나

물흐르는 소리가 아름다운 수달래계곡을 오르다 보면

급수대 학소대 시루봉 사이의 천길바위절벽 협곡을

지난다. 주왕산 등반로는 아이들도 걸어 오를 만큼 완만하다.

제1, 제3폭포를 거쳐 내원동마을에 오른 뒤 하산길에

제2폭포와 주왕암 주왕굴을 둘러본다. 폭포 3개는 모두가 2단폭포.

내원동마을에는 내원산방 사슴할아버지집 등 산중식당 겸 찻집이

4개 있다. 한여름에 반딧불이가 나타나는

청징한 곳이다. 주산지는 1721년에 조성한 오래된 저수지.

콘크리트댐을 보기 전까지는 자연늪이라고 생각하리만큼

모든 게 자연스럽다. 물 속에서 도 썩지 않고 자라는 나무, 물에 비친 산경 등 모든 게 특이하다. 사진작가들의 촬영명소로 새벽

물안개 피어오르는 연못이 가장 볼 만하다. 민박집

임용성씨댁(054-873-4093). 방 한칸 3만원(4인기준).

◆승부역-역무원 4명 초미니 산골역

‘승부역은 하늘도 세 평 꽃밭도 세 평이나 영동의 중심이요

수송의 동맥이다.” 65년 당시 이 역에 근무했던 한

역무원이 쓴 이 글로 유명해진 영동선의 오지역 승부. 이 글은

정말 세 평도 안되는 철길 옆 작은 꽃밭의 바위벽에

흰 페인트로 지금도 쓰여 있다. 하루 24회 지나는

열차(여객 4회, 화물 20회) 중 정차하는 것은 통일호(2회) 뿐.

낙동강변 산자락에 있어 출렁다리를 건너야

역사에 닿는다. 이 역의 고정 승객은 5명.

자동차로 40분 걸리는 석포면으로 등교하는 초등 및

중학생들. 봉화(1시간15분 소요)로 장보러 가는 주민도 가끔

이용한다. 역무원은 모두 4명. 2명씩 24시간

교대근무한다. 하루 종일 사람 만나기가 어려운 곳이었지만

최근 겨울에 ‘눈꽃열차’, 여름에 ‘신록열차’가 운행돼

주말이면 사람구경도 할 수 있게 됐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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