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윔블던대회]비너스-세레나 자매 4강 격돌

  • 입력 2000년 7월 5일 18시 47분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했던가.

그럼 ‘흑진주’ 비너스(20) 세레나(19) 윌리엄스 자매의 아버지 리처드 윌리엄스(미국)도 그럴까. 겨우 걸음마를 시작한 두딸에게 처음 라켓을 쥐어준 리처드. 로스앤젤레스 빈민가의 공설코트에서 정규교육과정도 무시한 채 어렵게 직접 테니스를 가르쳤다. 언젠가 비너스와 세레나가 나란히 세계 정상에 서리라는 기대 속에.

그런 리차드의 꿈이 123년 역사의 2000년 윔블던대회에서 영글고 있다. 미국의 독립기념일인 4일 영국 런던의 올 잉글랜드클럽에서 열린 여자단식 준준결승. 세레나와 비너스가 잇따라 승리, 준결승에서 자매 대결을 펼치게 된 것. 이날 리처드는 1번 코트에서 세레나의 경기를 지켜보다 센터 코트로 달려가 톱시드의 마르티나 힝기스와 맞붙은 비너스를 응원했다.

메이저 대회 4강에서 자매가 맞대결하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 이들은 여지껏 4차례 ‘집안 싸움’을 벌여 비너스가 98년 호주오픈 2회전 승리를 포함해 3승1패로 우위를 보였다. 최근인 지난해 그랜드슬램컵에서는 세레나가 3연패를 끊고 첫승을 거뒀다.

비너스와 세레나는 6일 결승행을 다툰다. 이들에게 똑같이 75달러씩 내기를 건 리차드는 이 경기 관전을 장례식 참석에 비유했다. 지는 쪽은 땅에 묻히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니냐는 게 그의 말.

그 광경을 외면하고 싶었을까. 리처드는 실제로 한 장례식에 가기 위해 딸들의 게임은 볼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누구를 응원할 수도 없는 상황을 피해보자는 뜻. 생애 첫 메이저 우승을 노리는 비너스는 “세레나는 힘에서 나를 압도한다”며 “설사 지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당하는 것보다는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둘다 강력한 서브 앤드 발리가 주무기. 손목 부상 후유증이 있는 언니보다는 지난해 US오픈 챔피언으로 이번 대회에서 상승세를 타고 있는 동생의 우위가 점쳐진다. 윔블던 복식 파트너로 8강까지 오른 비너스와 세레나는 5일 사이좋게 몸을 풀며 도타운 우애를 과시했다.

결전을 앞둔 두딸 그리고 그들 자매의 아버지에게 누가 이기고 지는 것은 그리 큰 문제는 아닐 것 같다. 어쨌든 윌리엄스 가문의 승리이기 때문이다.

한편 지난해 챔피언인 린제이 데이븐포트(미국)는 4강에 올라 10대 돌풍의 주역 옐레나 다킥(호주)와 만난다.

<김종석기자·윔블던외신종합>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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