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경택칼럼]21세기, 이제는 여성!

  • 입력 2000년 7월 5일 19시 04분


‘한국 여권(女權) 세계 63위’

며칠 전 신문기사 제목이다. 선뜻 믿어지지않는 얘기다. 이미 수년 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으로 선진국대열에 들어섰고 국내총생산(GDP)으로도 세계 13위 수준(99년도 기준)의 한국이 아무리 여권이 낮다고 해도 63위로까지 처질 수 있는가. 이 숫자만으로 보면 완전히 후진국 수준이다. 짤막한 기사만으로는 이해가 어려워 여성특별위원회에 알아봤다.

내용인즉 이렇다. 유엔은 지난달 ‘인간개발보고서’를 발간하면서 여러 지수를 발표했다. 그중 하나가 여성권한척도(GEM·Gender Empowerment Mea-sure). GEM은 여성의 국회의원수 행정관리직 전문기술직 그리고 남녀소득차를 기준으로 여성의 정치 경제활동과 정책과정에서의 참여도를 측정한 것이다. 즉 비교적 고위직에서의 남녀평등정도를 평가한 것이다. 이것이 조사대상 70개국 중 63위라는 것이다. 99년은 78위(102개국), 98년은 83위(102개국)이었다. 비율로 보면 우리의 여권은 상대적으로 더 낮아졌다. 우리가 나빠진 것이라기보다는 외국이 더 좋아진 것이다.

유엔보고서에는 인간개발지수(HDI)라는 것도 있는데 한국은 31위(174개국)이다. 이 지수는 모든 국민의 교육수준 국민소득 평균수명 등을 기준으로 측정한 수치다. HDI가 31위인데 비해 여성권한척도가 63위인 것을 보면 한국에서의 여성의 위치를 가늠해 볼 만하다. 하나의 예로 전체 공무원 중 여성은 29%이지만 5급 이상은 4.4%뿐이다. 조금씩 개선된다고는 하지만 기업이나 공직이나 채용과 승진과정에서 여성에 대한 유형 무형의 차별의 벽은 아직도 높다.

지난해 여성특별위원회에 억울함을 호소함으로써 16년 만에 승진한 한 여성의 경우는 이같은 현실을 말해주는 대표적인 경우이다. 강원도 어느 지역의료보험조합에 근무하는 이 여성은 오직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승진 기회가 있을 때마다 탈락했다. 여권의 수준이 그 나라의 실질적 민주화의 척도라고 한다면 우리의 민주화 수준은 아직 멀었다.

21세기는 디지털시대요 여성의 시대라고들 한다. 올해 여성주간(7월1∼7일)의 주제도 ‘21세기, 이제는 여성!’이다. 우리는 1년 전부터 남녀차별금지법이 시행되고 있고 여성특별위원회는 곧 여성부로 승격한다.

그러나 우리 내면에 깊숙이 배어있는 성차별의식, 특히 남성들의 우월의식, 이기주의의 벽은 단단하다. 이것은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던 이른바 운동권조직에서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80년대 운동권의 한가운데 있던 권인숙씨(미국 클라크대 여성학 박사과정)는 말한다. 권씨가 ‘진보, 권위 그리고 성차별’(삼인刊‘우리 안의 파시즘’중에서)이란 글을 통해서 하는 얘기다. ‘문화적 배타성도 심했습니다. 특히 여학생들에게 그랬지요. 치마 입고 싶은 사람은 운동을 할 수 없는 분위기였죠. 사실 여학생은 남자가 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는 구조였습니다. …남성중심 공간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행동하고 사고해도 남성을 기준으로 하는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고…’라며 권위적 남성적 집단 분위기를 고발한다.

386세대 정치인들의 광주 술판사건도 그렇다. 그들은 벌써 기존 질서에 젖어있었다. 그 날이 5·18전야라는 것도, 그 도시가 광주라는 것도 개의치 않고 평소 남자들이 술집에서 의레 하던 것처럼 여종업원들의 시중을 받으며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불렀다. 그러나 ‘그게 아니다’라고 집어낸 것은 여성이었다. 같은 운동권 출신의 임수경씨다.

권인숙씨는 앞서 인용한 글 중에서 이미 말한 바 있다. ‘전대협 한총련의장들이 의장님으로 떠받쳐지면서 누렸을 그 권위와 자기 숭상의 경험이, 계보정치에 물든 정치판에서 어떤 새로움을 던질 수 있게 할는지에 대해서도 꽤 냉소적이 됩니다.’ 그렇지만 386정치신인들에게 거는 기대는 여전히 크다.

남북화해시대를 맞아 남북 모두 각자의 내면에서 불신과 증오의 독초를 뽑아내고 상호이해와 협력의 씨앗을 뿌려야 하듯이, 창의성과 유연성이 강조되는 21세기 디지털시대를 맞아 우리 우리 마음속의 편견과 차별의식을 걷어내고 대신 남녀평등의 꽃을 피워내자. 그렇지 못하면 우리는 결코 정보화시대의 발전 속도를 따라잡지 못할 것이다.

어경택<논설실장>euh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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