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원군이 힘을 얻기까지 파락호처럼 지낸 것은 다 아는 얘기다. 그런 대원군의 뒤를 캐고 권력쪽에 악담을 흘려 가며 빌붙던 최아무개가 있었다. 어느 날 대원군이 집권하자 그의 행랑채에 바로 그 최가 들어앉아 있었다. 화가 치민 대원군이 물었다. “네가 무슨 낯으로 여기까지 왔느냐?” 그러자 최가 대답했다. “나는 장터만 쫓아다니는 장돌뱅이 아닙니까. 이 집에 장이 섰다니까 온 것이지요.”
▷문전성시(門前成市)라는 말을 떠올리게 하는 야담이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 주변에는 이른바 ‘영양가’를 좇아 숱한 사람이 몰리고 장이 선다. 요즘 민주당의 권노갑(權魯甲)고문을 둘러싸고 서는 장도 그 중의 하나다. 아니, 이 시절에 가장 주목할 만한 ‘장’일 것이다. 그는 오늘의 대통령을 40년동안 모셔 왔고, DJ가 감옥에 가고 사형 선고를 받을 때도 떠난 적이 없다. 훗날 자신의 비명(碑銘)은 ‘김대중의 비서실장’이라는 한 마디면 족하다고 보도된 적도 있다.
▷그런 심복 측근을 세상이 내버려 둘 리 만무하다. DJ가 야당을 할 때 한보그룹에서 권고문에게 돈을 준 것도 다 ‘실력자’로 보기 때문이었다. 이 한보 수뢰 때문에 음지를 헤맬 때도 그는 초라하지 않았다. 98년 자녀 결혼식 때도 여야 정치인 50여명 등 수백명의 하객들로 붐볐다. 일본의 대학에 연수차 드나들 때도 공항은 큰 장이 서곤 했다. DJ집권 후 성시(成市)가 지나쳐 눈총을 받을까 봐 연구소를 열려다 말기도 하고, 지난해 10월에는 출판기념회를 취소하기도 했다.
▷권고문은 요즘 전당대회의 최고위원 출마 문제로 관심을 모은다. 민주당 내에서도 그의 출마에 양론으로 갈리는 모양이다. 지지측은 ‘대권에 욕심이 없는 권고문이 당의 실세로 나서서 향후 교통 정리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다. 반대측은 ‘산뜻한 이미지의 전국 정당에 안 어울리는 구시대 이미지’라며 나서지 말라는 논리다. 차근히 말을 뒤집어 보면 권노갑 장과 맞수 장터간의 이해 대립, 세 싸움 같기도 하다. 장돌뱅이가 우글거리는 장터는 늘 소란하고 혼탁하다. 마치 해가 지면 파장(罷場)이 오는 것을 모르는 듯이.
<김충식논설위원> seesch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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