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삼윤의 문명과 디자인]서양종과 에밀레종

  • 입력 2000년 7월 9일 18시 34분


중학시절 아프리카의 슈바이처 박사를 흠모하다 그에게 편지까지 보내기도 했던 나는 그로부터 30년도 더 지나서야 그가 목회도 하고 오르간 반주도 했던 스트라스부르의 성니콜라스 교회를 찾을 수 있었다.

독일과 프랑스 접경지대에 있는 스트라스부르를 지나다 그 때의 일이 생각나 만사 제쳐놓고 시간을 냈다. 그러나 일요일이 아니어서인지 문이 잠겨 있었다. 대신 그가 가끔 들렸을 것 같은 운하 건너편의 성토마스 성당으로 발길을 돌렸다. 예배가 없는 날인데도 파이프 오르간의 장중한 선율이 고딕양식의 성당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차분히 가라앉는 듯하다가 갑자기 속에서 무언가 솟아나는 듯한 그 소리는 마치 자신을 죽이고 신에게 다가가려는 인간의 모습을 연상케 했다. 그 순간 나는 갑자기 중세의 어느 길목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졌다.

그러나 한참 듣다 보니 그것은 인간이 아니라 인간을 보듬으려는 신의 모습이란 생각이 들었다. 음과 음이 겹쳐서 울리는 파이프 오르간 특유의 잔음(殘音)이 고딕 건축물의 드넓은 벽과 천장을 덮고 있는 굴곡들을 샅샅이 더듬고 있는 듯했기 때문이다. 그때서야 나는 왜 초기의 교회음악이 피아노가 아니라 오르간, 그것도 파이프 오르간을 선호하였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나가 울리면 또 하나가 울려 잔음이 겹치게 되는 교회의 종소리도 파이프 오르간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교회는 어김없이 종탑을 두었는데 어떤 곳에서는 교회의 가장 높은 곳에다 종을 설치했고 또 어떤 곳에서는 별도의 건물을 세우기도 했다.

갈릴레오가 ‘낙하의 법칙’을 실험했다고 해서 더욱 유명해진 피사의 사탑은 독립된 종탑 형태로서 원형의 탑 속에는 많은 종들이 매달려 있다. 종에 연결된 줄을 밑에서 힘껏 잡아당기면 그것들이 서로 부딪치면서 땡그랑 소리를 내는 것이다. 피사의 사탑만이 아니라 베네치아의 성 마르코 성당의 종탑, 피렌체의 두오모 종탑 등 서양의 종은 모두가 이런 형식이다.

그들이 종을 만들고 또 화려하고 거대한 종탑을 세운 이유는 사람들에게 시간을 가르쳐 주고 예배 시간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무슬림들이 예배소인 모스크 옆에 높다란 첨탑 모양의 ‘미나렛’을 세워, 사람의 음성(이를 ‘아잔’이라 한다)으로 기도시간을 알렸던 것처럼.

태엽시계를 만든 유럽인들은 그것을 시청 건물벽 높은 곳에 걸어놓고 바늘의 규칙적인 움직임과 그에 따라 울리는 소리로 시간을 알리게 된 뒤에도 이 종탑으로부터 해방되진 못했다. 시계가 공학적 발명품이라는 속성 때문에 시민들에게 노동의 시간을 알렸을 뿐 예배시간을 알리는 일은 여전히 종이 감당했기 때문이다.

땡그랑 소리는 ‘지금은 교회 갈 시간이다’ ‘지금은 수업 할 시간이다’며 무언가를 알리는 기능을 수행해야 했으므로 마땅히 요란스러워야 했다. 그렇게 하려면 종을 치는 동작이 수월해야 한다. 그래야만 연속해서 종을 칠 수 있다. 그 결과 교회의 종은 파이프 오르간처럼 복잡한 발성조직을 갖지 않았고 또 그것이 크건 작건 모두 종의 안쪽 벽을 쳐서(內打式) 소리를 내게 되어 있다. 또 여러가지 종을 높은 곳에 매달고 동시에 쳐 소리가 멀리 퍼져나가도록 한다. 이것이 서양 종의 장점이면서 한계다.

반면 우리, 나아가 동양의 종은 외벽을 쳐서(外打式) 소리를 낸다. 그래서 종이 크게 마련이며 소리 또한 은은하고 여운도 길다. 여러 개의 종을 동시에 치는 형태가 아니므로 잔음이 서로 겹치는 일도 없다.

때리는 장치도 작은 금속 봉이 아니라 굵은 나무막대기라 울림이 넉넉하다. 그래서 느낌이 서양 종과 사뭇 다르다. 누군가가 지금 나에게 무엇을 하라고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 지금 하고 있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 지를 스스로 되짚어 보게 한다. 거기에는 강요가 아니라 자발이, 구원이 아니라 해탈이 깃들어 있다. 소리는 비록 바깥으로 퍼져나가는 것이긴 해도 그 지향점은 어디까지나 나 자신인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서른세 번 울리는 보신각 종소리를 들으며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다. 새 밀레니엄의 원년을 맞은 올해에도 어김없이 그 종소리를 들었다. 미국인들이 뉴욕의 타임 스퀘어에서 휘황찬란한 숫자의 바뀜(디지털 시계)을 보고 환호작약하며 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우리 종의 뛰어남과 생명력은 넉넉한 울림에 있다. 제작과정에 아이를 넣었다는 전설도 있었다. 우리의 문화에 익숙치않은 독일의 고고학자 켄멜 박사가 “이 종이야말로 한국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가장 뛰어난 종이다. 만약 독일에 이만한 종이 있다면 이 종 하나만으로도 족히 훌륭한 박물관을 만들 수 있다”고 상찬한 바 있다. 에밀레종은 우리에게 종이 어떤 존재인지를 잘 설명해 준다.

에밀레종의 끊어질 듯 하다가 다시 이어지는 소위 ‘맥놀이’ 현상은 기술적 정성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아직 그 비밀이 다 풀리지 않아 여전히 신비에 싸여 있긴 하지만 에밀레종의 구조와 형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느 정도 이유를 헤아릴 수 있다. 꼭대기에는 용모양의 고리와 소리를 가두어 둘 수 있는 음통(音筒)이, 그 아래엔 유곽대와 유두가, 또 종을 타종하는 부위에는 돋을 새김의 당좌가 각 자리잡고 있으며 밑부분은 소리가 갑자기 새나가지 않도록 오므라든 모습이기 때문이다.

구조와 형태만 특이한 것이 아니다. 용모양의 고리(용뉴)와 유곽대, 종 표면의 날아갈 듯한 비천상 조각, 맨 아래쪽을 두르고 있는 장식 띠 등은 하나 하나가 독창적인 아름다움을 발한다. 에밀레종의 신비는 아마도 이런 모든 것들이 각각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가 풀려야만 비로소 전모가 밝혀질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는 그때의 철학과 과학을 다 모른다.

우리의 불행은 에밀레종을 만들었던 신라인들의 지혜와 청자를 빚어낸 고려인들의 과학을 되살리지 못한데 연유하는 것은 아니다. 남이 세운 가치, 남이 만든 기준, 남의 몸, 남의 땅에 맞도록 되어 있는 삶의 방식과 질서를 무심코 좇다보니 그만 ‘내가 빠진’ 삶을 살 수밖에 없었고, 시간의 주인공이기보다는 방관자로 일관하고 말았다는 사실에 있는 것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세상을 다 바꿔” 라며 변화야말로 이 시대 최고의 가치라면서도 여전히 타율적인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생각을 하지 못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세기 우리는 학교와 교회, 공장 등에서 들려오는 서양식 종소리에 이끌려 소위 ‘선진국’ 사람들이 하는 것을 따라하기에 정신이 없었던 상태에서 조금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흉내내기에 급급했던 것은 계선조직, 인사고과, 어셈블리 라인과 같은 인위적인 감독체계는 서양식 종과 시계탑이 지배하는 타율적 사회였다. 그러나 지금은 각자가 리듬을 갖고, 개성을 발휘해야 하는 감성과 창의력의 시대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게 하는 에밀레종의 지혜가 필요한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권삼윤(문명비평가)tumid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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