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송영언/'고객감동'의 정부는 없는가

  • 입력 2000년 7월 9일 18시 49분


나라가 어수선하다. 의료대란에 이어 은행파업이 우려되고 있다. 노사간의 충돌로 전국 곳곳이 시끄럽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협상들은 진통을 겪고 있다.

청와대와 정부 여당 사람들은 억울할 것이다. 남북 두 정상이 손을 맞잡던 그 날, 국민이 느꼈던 감동이 이 같은 어수선함 속에 묻히고 있지 않는가 하는 아쉬움도 많을 것이다.

왜 일이 이처럼 꼬이기만 할까. 일부 은행원 노조원 의사 등의 잘못된 행태는 그것대로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온 데는 정부 여당의 책임이 크다. 정부는 이 같은 지적을 수용하지 않는다. 사태 해결을 위해 열심히 뛰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일의 질(質)이다. 모두들 개혁의 당위성만을 외칠 뿐 개혁으로 어려운 처지가 될 이해집단이나 주민들의 입장을 ‘따뜻한 마음’을 갖고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은 것 같다.

최근 있었던 정부와 민주당의 한 고위당정회의. 민주당 당직자가 물었다. “의약분업을 하면 의사들이 정말 진료만으로 생활을 할 수 있느냐. 그런 측면에서 의사들과 진지한 얘기를 해보았느냐.”

한 장관이 대답했다. “의약분업은 이미 작년에 합의된 사항으로 우리 정부의 주요한 개혁작업 중 하나다.” 의사들이 정부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정부 뜻대로 갈 수밖에 없다는 강경한 자세. 이 자리에 참석했던 한 관계자는 일부 장관의 그 같은 모습에 실망했다고 털어놨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말했다. “대통령은 온갖 어려움을 뚫고 평양까지 갔다. 정부 안에는 이 같은 자세로 자기 몸을 바쳐 꼬인 문제를 풀어보려는 장관이 없다.”

예를 들어 매향리사건이 일어났을 때나 노사분규 현장에서 실무자 차원을 넘어 국방부나 노동부의 고위인사가 누군가를 만나 그들을 달래고 보듬어준 경우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민주당 사람들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누구 하나 나서서 어려운 국가적인 문제들을 해결해보려는 사람이 안보인다. 다가올 전당대회에서 무슨 자리를 차지할지에만 눈이 팔려 있는 것 같다.

‘고객만족’ ‘고객감동’이란 말이 있다. 모든 것을 소비자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말이다. 기업들이 이를 목표로 세우고 뛴 지는 오래 전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정부는 어떤가. 정부 입장에서 소비자인 국민을 위해 얼마나 뛰고 있는가. 결코 만족이나 감동이란 표현은 쓸 수 없을 것 같다. 각 이해집단의 정부에 대한 불신은 위험수위를 넘어섰다. 은행원 노조원 등은 정부를 더 이상 믿지 못하겠다고 말한다. 의사들에 이어 약사들이 정부를 보는 눈도 곱지 않다.

어디 그뿐인가. 우리 사회의 모든 개인간, 집단간에는 믿음이 땅에 떨어졌다. 여당과 야당, 진보세력과 보수세력, 상사와 부하, 호남사람과 영남사람…. 모두가 그렇다.

믿음은 우리 사회를 지탱해주는 기본이다. 운전사를 믿기에 버스를 타고, 선생님을 믿기에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다. 그런 믿음들이 사라진다면 사회는 엉망이 되고 말 것이다. 하물며 정부를 믿지 않아서야.

국민을 감동시키는 정부와 정치는 진정 요원한 것인가. 평양의 감동이 내정(內政)에서 다시 살아날 수는 없는가.

<송영언 이슈부장>youngeo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