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쑹메이링은 ‘동양의 여걸’로도 불렸다. 공산당과 국민당의 내전, 중국의 항일전쟁, 국민당의 대만 도피 등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늘 한 가운데에 있었기 때문이다. 1927년 장제스와 결혼한 쑹여사는 미국에서의 유학을 바탕으로 전쟁 중인 1943년에는 중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여성으로는 두 번째로 미국 상하 양원 합동회의에서 연설했다. ‘일본을 우방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정신병자’라며 미국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1949년 국민당이 대만으로 쫓긴 후에도 쑹여사는 미국의 지원을 이끌어 냈다.
▷장제스 총통이 세계적 지도자로 부각된 것은 쑹여사의 덕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쑹여사는 대단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다. 1975년 장제스 총통이 사망한 뒤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생활하고 있지만, 미국인들이 세계에서 가장 존경하는 여성인사 10명의 명단에 빠지지 않았던 것도 그런 활동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쑹여사는 ‘하나의 중국’ 문제와 연관된 중-대만 관계 및 중-미 관계에서는 역시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쑹여사는 1995년 미국 의회가 마련한 승전 50주년 기념식에서 “나는 이제 누구를 도와줄 수가 없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쑹여사가 또 뉴스에 올랐다. 대만 TV BS방송이 발행하는 주간지가 엊그제 쑹여사가 반세기만에 중국 땅을 밟게 됐다고 보도했다. 쑹여사가 중국 지도자로부터 초청을 받아 가까운 시일 내에 중국을 방문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쑹여사가 중국을 방문할지, 나아가 중국에 정착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쑹여사의 중국 방문을 대만 사람들이 어떻게 볼지 궁금하다.
<윤득헌논설위원>dhy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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