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김제시 거전리 포구 주민 한영순씨(55)는 “이제 새만금에서 어업은 끝났다”고 말한다. 탐스럽기로 유명했던 이곳의 동죽, 백합 등 어패류가 올 들어서는 예년의 20%도 안나온다. 환경파괴를 조사하러 드나드는 외지인들을 보는 이 곳 주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이들에게 간척사업은 환경 문제가 아니라 생계의 문제인 것이다.
환경파괴 논란을 빚고 있는 새만금사업의 계속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민관합동조사단의 조사가 끝나고, ‘사업 계속이냐, 갯벌 보호냐’를 두고 지역 주민들간에도 분열을 거듭하고 있는 새만금 지역을 찾았다.
방조제 바깥쪽으로 15㎞ 정도 떨어진 부안군 격포리. 갯벌의 흙을 한 움큼 쥐어들면 짭짤한 바다 냄새 대신 시큼한 냄새가 난다. 간척사업 이후 물길이 막혀 갯벌과 바다가 썩어가고 있는 것.
이곳에서 근해어업을 하는 윤송길씨(36)는 일을 나가는 날보다 안나가는 날이 더 많다. 기름값, 어구값을 제하면 남는 돈이 없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고기가 지난해의 3분의 1도 안잡혀 대다수의 어민들은 빚에 허덕인다. 보통은 2000만∼3000만원, 10t 이상의 큰배를 모는 경우엔 빚이 억대에 이른다. 윤씨는 “하루벌이가 불확실해 어구상점에선 외상거래도 안한다”며 “그나마 방조제 안쪽에 있는 주민들은 보상이라도 받았지만 바깥쪽 주민들은 굶어죽게 생겼다”고 탄식했다.
갯벌은 거대한 자연정화조이자 각종 어류의 산란장소인 살아 숨쉬는 땅. 그러나 60% 넘게 건설된 방조제는 갯벌의 숨통을 막고 어류의 산란을 방해했다. 꽃게 숭어 등 어류들은 이제 변산반도를 찾지 않는다.
게다가 간척지 주민 보상이 마무리되고 어민신분증이 반납된 98년 이후엔 외지인들에게도 어장이 개방돼 치어 남획으로 어류들의 씨가 말라가고 있다.
부안군 두포리의 마을 공동 바지락양식장은 5년 전까지만 해도 가구당 월 300만원의 순수
익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지금은 20만원도 힘들어 아예 운영을 포기한 상태. 윤송길씨는 “뻘이 순환하지 못하고 계속 쌓이기 때문에 언뜻 보면 물이 맑아 보이지만 사실은 썩어 가는 것”이라며 “오염에 예민한 소라류는 찾아보기도 힘들다”고 덧붙였다.
상인들도 걱정이 크다. 김제시 심포항 입구에서 횟집을 하는 이금이씨(36)는 올 들어 두 집이나 문을 닫았다고 말했다. 갯벌이 망가진다는 보도가 잇따르자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겼고 수산물 공급도 예전 같지 않아 활어나 꽃게 등은 대천까지 가서 사와야 하는 형편이다.
많은 주민들은 ‘혹시 논 한마지기라도’ 하는 기대를 버리지 못한다. 어차피 어업은 틀렸고, 고향을 떠나기도 쉽지 않은 형편이라 간척지라도 나눠주길 바라는 것. 그러나 법적 보상은 이미 완결된 상태라 장담하기 힘들다.
“경제 개발이라고요? 바다를 망치는 대신 논을 만든다고 경제개발이 됩니까? 잘못된 일을 바로잡는데 이미 늦었다는 논리는 말이 안됩니다.” ‘새만금사업을 반대하는 부안사람들’의 신형록위원장은 유일한 해결책은 사업중단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새만금사업 반대' 신형록위원장▼
“자포자기에 빠진 주민들을 한사람씩이라도 만나 설득하겠습니다.”
‘새만금사업을 반대하는 부안사람들’의 신형록(申衡錄·35)위원장은 첫 사업으로 1월 개펄에 향나무를 묻는 ‘매향제(埋香祭)’를 가졌다. 1000년이 지나도록 이 땅을 온전히 후손들에게 물려주겠다는 표현이다. 환경문제에 문외한인 평범한 사업가에서 활동가로 변신하게 된 계기도 자신이 뛰어놀던 개펄을 아들과 손자에게도 보여주고 싶다는 순수한 마음에서였다.
그는 경제개발과 관광지개발이라는 새만금사업 찬성론자의 주장이 어이없다고 말한다. 공장도 아니고 논을 만드는 데 경제개발이 웬 말이며 회색 콘크리트 방조제가 개펄보다 더 좋은 관광지가 되겠냐는 것이다.
“새만금사업이 끝나면 전북 지역 개펄의 90%가 사라진다”고 말하는 그는 일부 정치인, 기업가들의 탁상행정이 이렇게 손쉽게 나라를 망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허탈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누구나 이 사업이 큰 과오라는 것을 압니다. 단지 지금까지 쏟아부은 돈이 아까운 거지요. 하지만 앞으로 우리의 생활터전이 파괴되는 것에 비하면 투자액 손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부안〓김준석기자>kjs35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