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외교통상부와 민주당측 사이에 오간 얘기들이 논란이 되고 있는 것도 바로 그같은 말의 특성 때문일 것이다. 민주당측은 이인제(李仁濟)고문 등 여당의원 11명이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에 참석할 수 있도록 주선해 달라고 외교부에 ‘정중한 협조 부탁’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실상은 외교부에 ‘무리한 압력’을 가한 것이라는 괴문서가 등장했다. 외교부측도 압력을 느낄 정도의 어투는 전혀 아니었다는 등 직접 당사자들이 애써 부인하는데도 왜 그런 논란이 바람을 탈까.
▷우선 우리의 정치풍토 문제다. 아무리 여당측은 정중한 부탁을 했다 해도 정부측에서는그렇게 단순한 ‘부탁 수준’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게 현실이다. 당정간에는 엄연한 힘의 논리가 작용하고 있는데다 공무원이 소신을 견지할 수 있는 직업공무원제가 확립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는 정치인의 의식 문제다. 민주당측은 미국 공화당측과 해결해야 할 문제를 왜 엉뚱하게 외교부에 부탁하는가. 이는 외교 일선에서 바쁘게 일하는 외교관들을 마치 개인 비서처럼 이용하려는 일부 외유 정치인들의 구태와 크게 다를 바 없는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여기에다 그같은 일들이 괴문서 형태로, 그것도 민주당내에서 표출됐다는 사실이 놀랍다. 다분히 악의적인 표현의 단어들로 작성됐다는 이 괴문서는 그야말로 작성 경위나 전달과정이 미스터리라고 한다. 그래서 민주당 내에서는 일부 인사에 대한 음해설까지 퍼지고 있는 모양이다. 일의 성격이나 순서도 모른 채 무턱대고 행정부에 ‘부탁’만 하려는 발상이나 이를 떳떳하지 못한 방법으로 문제화하려는 행동 모두가 사실은 정치 개혁의 대상이다.
<남찬순논설위원>chans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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