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평준화정책, 원점에서 검토를

  • 입력 2000년 7월 11일 19시 08분


대통령 자문기구인 새교육공동체위원회가 2002년부터 ‘자립형 사립고’ 제도를 도입할 것을 대통령에게 건의했다. 자립형 사립고란 학교측이 학생선발권 수업료책정권 교육과정편성권을 갖는 ‘자율학교’다. 쉽게 말해 학교측이 원하는 대로 신입생을 뽑고 수업료도 얼마를 받아도 상관없는 것이다.

우리의 교육열로 미루어 이들 고교에 명문대 진학 실적이 차츰 쌓이게 되면 과거 명문고와 같은 학교가 다시 등장하는 것은 시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대통령이 이 방안을 수용할 것인가의 여부는 아직 불확실하지만 지금까지 새교육공동체위원회의 건의가 거의 다 받아들여졌다는 점에서 현실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만약 이렇게 된다면 예상되는 부작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당장 해당 고교의 입시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고 과외 수요도 그에 비례해 확대될 것이다. 이들 학교는 일반 학교보다 수업료를 크게 올려 받을 것이기 때문에 계층간 불평등의 문제도 제기될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평준화정책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다. 평준화정책은 중학교가 69년부터, 고등학교가 74년부터 채택해온 우리 중등교육의 대원칙이다. 하지만 자립형 사립고는 장기간 유지되어온 평준화의 틀에 상당한 ‘예외’를 인정하는 것이다. 전체 고교 가운데 사립고는 절반 이상이고 이들은 여건만 된다면 자립형 사립고가 될 수 있다. 평준화정책이 뿌리째 흔들리게 될 것은 명약관화하다.

사실 평준화정책 자체에 대한 비판 여론도 만만치 않다. 하향 평준화를 초래했다는 지적과 함께 최근에는 ‘학교 붕괴’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인재 양성을 중시하는 시대 흐름에 맞지 않는 정책이라는 소리도 높다. 이 점에서 이번 자립형 사립고 도입은 교육당국이 내놓은 일종의 평준화 보완책으로 볼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평준화정책이나 자립형 사립고 도입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에 앞서 교육당국의 대응 방식에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그동안 평준화정책은 특수목적고 등 여러 예외가 생기면서 당초의 취지가 크게 퇴색했다. 그러나 교육당국은 그때마다 임시방편으로만 대처함으로써 병을 내부에서 키운 결과를 초래했다. 이번 자립형 사립고 문제도 또 하나의 땜질 처방에 불과하다.

이제는 평준화를 유지할 것인가 말 것인가, 만약 보완을 한다면 어떤 식으로 할 것인가를 그야말로 원점에서 재검토할 시점이다. 교육당국은 더 이상 ‘땜질식’ ‘짜깁기식’으로 대처하지 말고 정공법으로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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