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그 그림을 봤을 때 나는 화가의 의도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나는 하얀 집을 되비추는 아랫쪽의 잔물결만 바라봤다. 그 잔물결이 내게 그다지 많은 의미를 남겨주지 못한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1994년이 되었다. 북한 핵문제로 사회가 떠들썩하긴 했지만, 그게 그렇게 심각한 문제인지는 몰랐다.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의 상황이었다는 것을 안 것은 뒷날 하버드대학교 케네디 스쿨이 엮은 ‘한반도, 운명에 관한 보고서’를 읽은 뒤의 일이다.
미국인들의 47퍼센트가 한반도에서 군사행동이 벌어져야만 한다고 믿고 있던 그 즈음, 나는 새롭게 변화한 학교에는 적응하지 못하고 도서관에만 박혀 있었다. 도서관에서 내가 읽은 책은 노벨상을 받은 동물학자 콘라트 로렌츠의 ‘공격성에 대하여’였다. 이 책에서 로렌츠는 생존 때문이 아니라 다른 이유로 해서 같은 종에게 공격을 가하는 한 어류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그 문제제기가 내 마음에 와 닿았다. 공격성이 생존욕구에서 기인한다고 할 때 궁극적으로는 서로 화합하는 것이 생존에 가장 합리적인데도 전쟁을 벌이는 인간의 행동양식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가?
그 때 묘하게도 그 그림을 다시 보고 싶은 욕구가 치밀어 화집을 구입했다. 독일의 타셴출판사에서 나온 르네 마그리트의 포스터북으로 유명한 그림 6점이 타블로이드 판형으로 수록돼 있었다. 내가 찾던 그림 ‘빛의 제국’도 그 안에 들어 있었다. 나는 ‘빛의 제국’을 창에 붙였다. 그 그림 속에 내 고민을 해결해주는 답안이 있었다.
언뜻 보기에 이 그림은 마그리트의 다른 그림처럼 괴기하지 않다. 호수와 마주하고 나무 아래에 선 하얀 집이다. 조금 어둡긴 하지만 아름다운 풍경을 그린 듯하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어떤 시보다도, 어떤 논설보다도 더 강렬한 논리를 담고 있다. 그림 속 지상의 시간은 분명히 밤인데도 하늘의 시간은 낮인 것이다. 도저히 함께 할 수 없는 두 영역이 한 자리에 모인 것이다. 그 사실을 알아차리는 순간, 이 세계가 새롭게 재편하는 광경을 목도할 수 있었다.
1994년의 고민과 이 그림에 바탕해 단편소설 ‘르네 마그리트, 빛의 제국, 1954년’ (창작집 ‘스무 살’에 수록·문학동네 펴냄)은 씌어지기 시작했다. 이 소설은 이복동생을 살리기 위해 자신은 죽어야만 한다고, 혹은 그 역으로 생각하는 한 사내에 대한 얘기다.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누구도 죽을 필요가 없다. 그동안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에 대해 우리가 조금이라도 책임감을 느낀다면, 다르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우리가 함께 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낮과 밤이 행복하게 공존하는 마그리트의 이 그림처럼 말이다.
김연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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