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인터뷰]홍종현 8단 "棋士가 되기전에 교양부터"

  • 입력 2000년 7월 11일 19시 17분


한 바둑계 인사의 표현을 빌자면 홍종현(洪鍾賢·54) 8단은 ‘바둑계에서 가장 자존심이 센 사람’이다.

그는 조선시대 딸깍발이 양반처럼 고지식한 원칙주의자요, 아쉽다고 남에게 머리를 숙이지 않는 꼬장꼬장한 선비형 기사이기 때문이다.

8일 오후 3시 한국기원 5층 연구생실. 아마 5단 실력이상의 청소년들이 입단을 목표로 불철주야 공부하는 곳. 홍8단은 이곳에서 연구생에게 바둑대신 한문을 가르치고 있었다.

“신체발부(身體髮膚)는 수지부모(受之父母)하니 불감훼상(不敢毁傷)이 효지시야(孝之始也)라.”

“자, 이 글은 ‘자기의 몸은 부모로부터 받은 것이니 훼손하거나 다치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라는 뜻이다.”

올 1월 연구생 총사범이 된 홍8단의 신독훈요(愼獨訓要) 강의. 연구생 100여명의 초롱초롱한 눈매가 그에게 집중된다.

신독훈요는 홍8단이 사서삼경(四書三經) 등 20여권의 한문 고전에서 주제별로 좋은 글을 모아 펴낸 책이다.

홍8단은 “연구생들이 대부분 10대인데다 정상적인 학교교육을 포기한 채 오로지 바둑에만 매달리고 있어 프로기사가 되기 위한 최소한의 교양을 갖출 수 있도록 한문 교육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연구생들에게 한문을 외우도록 하거나 숙제를 내주지 않는다. 다만 수업시간 만큼은 바둑을 생각하지 않고 한문공부에만 집중해달라고 요구한다.

홍8단은 84∼86년에도 연구생 사범을 맡은 적이 있다. 그 때는 이창호(李昌鎬) 유시훈(柳時熏) 등이 연구생이던 시절. 호랑이 훈장으로 이름날 정도로 엄격한 규율속에서 바둑 공부를 시켜 이들이 대성하는데 단단히 한몫을 했다는 평. 최근 연구생이 100명으로 늘어나면서 내부 기강이 흐트러졌다고 판단한 한국기원이 15년만에 홍8단에게 사범직을 다시 맡겼다.

홍 8단은 80년대 중반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바둑 내제자 제도를 도입한 주인공. 그는 신독헌(愼獨軒)이란 당호(堂號)를 내걸고 아파트 한채를 통째로 빌려 바둑 유망주들을 합숙 훈련시켰다. 이상훈(李相勳) 윤성현(尹盛鉉) 6단 등 쟁쟁한 신예들이 모두 신독헌 출신.

홍 8단은 프로기사 중 유일한 서울대 법대 출신. 남들은 한 번 하기도 힘든 입단을 두번이나 했다. 한번은 입단했다가 사법고시를 보기 위해 자진 포기했으나 바둑을 잊지못해 다시 입단한 것.

입단초기 홍8단은 상당한 유망주였다. 71년 ‘청소년배’에서 우승했으며 77년 21기 국수전에서는 조훈현 9단과 도전기를 벌이기도 했다. 실리에 ‘짜고’ 끝내기를 잘한다고 해서 별명이 ‘홍소금’.

<서정보기자>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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