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홍콩을 중심으로 대륙에 퍼져나간 광둥어 노래붐이 이제 한국어로 옮겨붙었다고 중국인들은 말한다. 신세대 사이에서는 한국노래 한두곡쯤 부를 줄 알아야 따돌림받지 않게끔 됐다.
베이징 어디에서나 ‘행복’(H.O.T.) ‘많이 많이’(구피) ‘나나나’(유승준) 등 한국노래 음반이 쉽게 눈에 띈다. 한국에서는 유행의 뒤안길로 사라진 ‘꿍따리 샤바라’(클론)도 중국곡으로 번안돼 한창 택시 안에서 흘러나온다. ‘바꿔’(이정현)는 베이징 가라오케를 석권했다.
베이징교통방송은 지난해 5월부터 ‘한강의 밤(漢江之夜)’이라는 고정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매일 방송되는 이 방송의 ‘환락무한(歡樂無限)’이라는 프로그램에서도 거의 매일 한국 노래와 풍물을 소개하고 있다. 베이징음악방송도 한국 노래 소개에 열성이다.
한국 드라마도 대인기를 끌고 있다.
‘사랑은 뭐길래’ ‘별은 내 가슴에’ 등 철지난 한국 TV 드라마들이 중국 안방을 연이어 강타했다. ‘내사랑 안녕’의 안재욱과 ‘질투’의 최진실이 대륙의 스타로 부상했다.
음식이라면 일가견이 있다는 중국인들이 한국 음식에까지 열광하고 있는 모습에서 ‘한국풍’ 유행의 기세가 느껴진다. 올해 선양(瀋陽)에서 베이징으로 진출한 한국 불고기집 ‘설악산’은 전국에 이미 21개의 체인점을 마련했다. 수백개의 좌석이 중국인들로 가득 찬다.
한국산 제품들도 덩달아 인기다. ‘마늘분쟁’으로 수입 금지된 삼성 애니콜 휴대전화는 한때 없어서 못 팔 지경이었다. LG의 에어컨과 전자레인지도 중국 시장을 크게 분할했다.
‘한류’가 몰아치면서 ‘한미(韓迷·한국마니아)’들이 급증했다. 한국 인기스타들에 대한 팬클럽도 생겼다.
‘제이리 라우’라는 필명의 15세 중국 소녀는 “한국노래는 하이 에너지(high energy)형”이라며 “NRG를 너무 사랑하는 자신이 미울 지경”이라고 인터넷에 올렸다. ‘한멍(韓夢)’이라는 학생은 “조선반도에서 온 가수들이 중국 대륙에 순정(純淨)과 열정(熱情)의 가풍(歌風)을 가져왔다”며 “한국으로 날아가 보고 싶다”고 밝혔다.
중국에서 ‘한류’가 본격적으로 몰아친 것은 2∼3년 전부터.
중국 안방에 한국 드라마 붐이 일어난 뒤 한국 노래가 가세했다. 2월 대성황을 이룬 H.O.T.의 베이징공연에서는 H.O.T. 티셔츠가 불티나게 팔렸고, 이내 H.O.T. 상표를 단 화장품도 생겨났다. 젊은이들을 겨냥한 ‘H.O.T. 커피숍’도 이때 생겨나 성업중이다. H.O.T. 음반은 그 사이 10만장 이상이 팔렸다.
음반뿐만 아니라 가수들도 직접 중국 안방으로 뛰어들었다. 지난해 후난(湖南)위성TV는 ‘쾌락대본영(快樂大本營)’이란 프로그램에 NRG를 출연시켜 대성공을 거뒀다. 그 후 코요태 TTMA 구피 등이 연이어 중국 TV에 출연했다.
관영 CCTV까지 한류 보급에 가세, 5월 구이린(桂林)에서 열린 NRG와 베이비복스 공연실황을 소개했다. 이와 함께 한국음악 특집을 비정기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음악잡지들은 더욱 바쁘다. 상하이(上海)음악세계 등 중국에서 발행되는 수십종의 잡지는 거의 매호 한국 가수들을 소개하고 있다. ‘청춘지성(靑春之星)’은 97년 이래 ‘한국가요 톱10’을 싣고 있다. 빌보드차트를 제외하고는 유일하게 게재하는 외국 톱10이다.
이같은 한국 바람은 이번 여름을 지나면서 더욱 급류를 탈 전망이다. NRG는 14일 베이징(北京)을 시작으로 16일 상하이(上海), 19일 하얼빈(哈爾濱)에서 대규모 공연을 갖는다. 15일에는 안재욱이 베이징에서 리사이틀을 개최한다. 중국 20여개 TV는 8월부터 안재욱이 출연한 ‘별은 내 가슴에’를 재방영할 예정.
드라마 ‘사랑은 뭐길래’로 중국에서 스타로 부상한 임경옥은 최근 베이징의 TV 드라마 제작사와 주연 캐스팅 계약을 했다. 임경옥을 캐스팅한 드라마사 사장 천페이쓰(陳佩斯)는 기자회견에서 “한국 드라마 붐을 타야 한다는 점도 제작사로서는 무시할 수 없다”고 캐스팅 배경을 밝혔다.
한국풍의 무엇이 중국인을 사로잡고 있는가. 전문가들은 치밀한 구성과 산뜻한 이미지, 그리고 역동성에서 오는 신선함이 어필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리고 있다.
<베이징〓이종환특파원>ljh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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