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포격전과 총격전에 백병전까지 합세해 한번의 전투에 평균 수천명의 사상자를 낳았던 18세기 전투장면의 사실성을 높이기 위해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로버트 로댓에게 각본을 맡겼다. 여기에 미국 독립전쟁의 향수를 우주공간까지 확장했던 ‘인디펜던스 데이’의 롤랜드 에머리히가 메가폰을 잡았으니 뉴밀레니엄의 첫번째 미국 독립기념일을 기념하기엔 더할 나위없는 라인업이다.
‘꿩잡는 것이 매’라고 ‘브레이브 하트’에서 스코틀랜드의 독립투사 윌리엄 월러스로 잉글랜드인들을 무찔렀던 멜 깁슨은 18세기 아메리카 식민지의 전쟁영웅 벤저민 마틴으로 영국인 킬러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할리우드는 이를 위해 호주 출신의 이 ‘용병’에게 2500만달러를 지불했고 이마에 깊게 패인 주름살만큼 연륜이 쌓인 노병은 이번만큼은 결코 적에게 심장을 내주지 않는다.
그러나 영화속 마틴은 오히려 ‘독립선언문’의 이상에 투철한 인물은 아니다. 오히려 젊은 시절 영국과 프랑스간 식민지 쟁탈전에서 펼친 잔혹성에 대한 죄책감으로 7남매를 둔 홀아비로, 솜씨없는 목수로 살아가려는 현실주의자다. ‘자식이 신념’인 그에겐 3000마일 밖의 폭군(영국왕)이나 1마일 밖의 미 대륙의회나 별 차이가 없다.
그런 그를 다시 전쟁터로 끌고가는 것은 자유나 평등 같은 이상이 아니라 자식을 보호하려는 본능과 아들을 해친 영국군에 대한 복수심이다. 그러나 일단 무기를 든 반전주의자는 야수적 본능으로 가득 찬 ‘인간병기’로 탈바꿈한다. 혼자서 20여명의 영국군을 순식간에 해치우는 그는 13세기 스코틀랜드 전사보다는 20세기 람보에 가깝다.
제작진은 이런 영웅상을 만들기 위해 신출귀몰하는 게릴라전으로 ‘늪속의 여우’라는 별명을 얻은 민병대 사령관 프란시스 매리언을 비롯한 독립전쟁의 여러 실존영웅들을 짜깁기했다. 그래서일까. 마틴은 계몽주의적 명분과 식민지 재산권 다툼이라는 현실이 뒤섞인 독립전쟁의 이중성과 항상 가족주의와 폭력적 영웅주의의 두 얼굴을 지닌 할리우드의 정신분열적 모습을 동시에 담아낸 프랑켄슈타인같은 매력을 뿜는다.
72개의 발이 달린 크레인에 1700여명이 동원된 근대적 전투장면들은 사실적이지만 ‘글래디에이터’의 고대 전투장면 보다는 우아함이 처지고 구소련의 ‘전쟁과 평화’에 비해서는 카리스마가 부족하다. 2시간40분의 상영시간도 약간 부담스럽다. 15세이상 관람가.
<권재현기자>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