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고는 은행돈을 마구 끌어다 쓰며 무리한 확장을 거듭해오다가 4월 정부와 채권은행단에 6390억엔의 채권을 포기해줄 것을 요청했다. 총 부채 1조8700억엔에 거래처 1만개사, 종업원 1만명이나 되는 기업이 도산하면 국민경제에 미칠 파장이 엄청나다는 이유였다. 일본 정부도 검토를 거듭한 끝에 최근 970억엔의 채권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여론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 아사히신문 등 언론이 일제히 포문을 열었다. 눈앞의 손익만 계산하면 소고를 구제하는 것이 타당하지만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을 잃기 쉽다는 지적이었다. 수많은 샐러리맨이 임금삭감과 정리해고, 개인파산을 겪고 중소기업들도 빚더미에 몰려 잇따라 쓰러지는 판에 대기업이라고 해서 정부가 구제한다면 시장경제원칙에 어긋난다는 것이 반대논리였다.
결국 소고는 여론에 굴복해 도산을 선택했지만 경제적 타격은 더 커졌다. 금융기관이 회수할 수 없는 부채가 1조2200억엔에 이르고 국민부담도 240억엔이나 늘어났다.
그런데도 일본 언론과 국민은 이 같은 조치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당장 값비싼 대가를 치르더라도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가 확산돼 ‘제2, 제3의 소고 출현’은 막아야 한다는 뜻이다.
소고의 경우는 한국에도 타산지석이 될 수 있다. 한국 정부는 이미 부실은행을 구제하느라 공적자금 64조원을 투입했고 앞으로 30조원을 더 쏟아부어야 한다. 게다가 최근 금융기관의 노사갈등 끝에 정부는 자력재생이 어려운 금융기관에 또다시 공적자금을 투입하기로 약속했다. 공적자금을 주는 쪽과 받는 쪽 모두 소고의 도산을 지켜보며 국민의 세금은 금쪽 같이 써야 한다는 원칙이라도 되새겼으면 한다.
이영이<도쿄특파원>yes202@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