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덮고, 미루고, 말리고'

  • 입력 2000년 7월 13일 19시 10분


공무원 사회의 ‘방관자(傍觀者) 신드롬’이 심각하다. 일손을 놓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공무원을 비웃듯이 쳐다보는 풍조가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과천청사 주변에는 심지어 ‘3고 지혜’라는 말조차 나돈다고 한다. 골치 아픈 문제는 ‘덮고’,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문제는 ‘미루고’, 상급자가 적극적으로 일하려 하면 ‘말리고’ 하는 것이 요즘 공무원의 생존 처세 비책으로 화제가 된다고 한다.

이렇게 방관병이 확산되는 것은 무엇보다 대통령 5년 단임제도가 가장 큰 원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정권교체가 되면 공무원의 입지가 달라진다는 판단에서 대통령 임기 후반에 접어들수록 많은 공무원들이 열심히 일에 매달릴 유인(誘因)을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른 큰 원인으로는 시민단체나 이익단체 등 다양한 세력이 행정을 드세게 흔드는 새로운 환경이 지적된다. 과거와는 달리 동강댐 백지화, 의사폐업, 금융파업에서 보여지듯 행정의 권위나 타당성 부여에 도전하는 힘이 강력해지고 심지어 집단이익 관철을 위해 불법적으로 대드는 상황까지 벌어져 정부가 여기에 휘말리게 되고 결국 소속 공무원들이 좌절감과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개별 공무원의 기본 자세는 대통령 임기나 정권에 관계없이 국민에게 봉사하는 공복(公僕)으로 일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며 당장 대통령 임기를 어쩔 수도 없다. 그런 전제 하에 우리는 최근의 달라진 행정 환경에 대처하는 정부의 자세에서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의사폐업 및 금융파업 대처에서 보여 주었듯이 사전에 충분한 이해조정과 준비과정을 소홀히 한 채 밀어붙이다가 정부도 상처를 입고 공무원의 사기도 떨어뜨린 측면이 있다.

공무원들은 ‘정치적’ 실적 겨냥이나 여론만을 의식한 ‘정치적’ 타협 후퇴 때문에 행정 원칙이 흔들린다고 반발하기도 하고 개각을 의식한 장관 등 책임자들이 ‘위’의 눈치를 살피는 바람에 일선 공무원들로서는 일할 맛이 나지 않는다는 토로도 한다. 이런 측면에서 공직 기강을 새롭게 하고 사기를 진작시킬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 특정지역 출신들의 인사 주도 및 전횡, 낙하산 인사 등이 공직내부의 유대를 손상하고 통합성을 저해하며 공직의 ‘방관자’층을 늘리고 있다는 소리도 높다. 역대 정권에서 그랬듯이 요직의 ‘지역 독과점’은 늘 조직 전반의 사기를 저해하고 행정 발전을 가로막는 요인이다. 공직의 방관자를 최소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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