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령기자의 책·사람·세상]꿈꾸는 편집자

  • 입력 2000년 7월 14일 18시 39분


J주간.

서울을 떠나 나무와 햇빛에 묻혀 계신다지요? 신간 한권을 재미있게 읽다가 문득 새로 출판사를 만들기 위해 잠시 쉬고 있는 J주간이 생각났습니다.

‘일본의 소출판’(신한미디어)이라는 이 책은 많아야 직원 열사람 안쪽, 심하게는 사장도 편집자도 영업사원도 한사람이 도맡아하며 꿋꿋이 자신만의 기획을 펼쳐나가는 일본의 작은 출판사 스물여덟곳에 대한 탐방인터뷰집입니다. 아 이렇게도 책을 낼 수 있겠구나 하는 발상이 참 신선하더군요.

오로지 버스에 관한 것만으로 잡지를 내는 출판사, 마약 폭주족 등 ‘변방’ 혹은 ‘금지’된 주제만을 다루는 출판사, 또 어느 곳은 메이지시대부터 2차대전 전까지 나온 책들을 복각판으로 내는데 종(種)당 출판부수가 겨우 100∼150부래요. 그런 작은 출판사들이 10년 넘게 잘들 버티고 있는데 당사자들은 그 이유를 ‘통일시장의 붕괴’에서 찾더군요. 그러니까 1970년대 이후 일본에서는 독자들이 유행으로 같은 책을 읽는 일은 드물어지고 다종다양한 주제로 출판시장이 세분화됐다는 거죠.

▼출판은 복권이 아니므로…▼

문득 “단군 이래 최대불황”이니 “베스트셀러가 안 터져서 시장이 안 굴러간다”느니 몇 년째 계속돼 온 한국출판계의 탄식이 다시 음미됐습니다. 내로라하는 출판사들조차 간판급 책 몇권에 의존해 살림을 꾸려가는 현실은 압니다. 그러나 이 장기불황에서 탈출하는 궁극적인 방도는 ‘대박의 꿈’이 복권처럼 맞아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달라진 독자의 요구를 간파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유행하고 있는 e비즈니스식으로 얘기하자면 ‘독자 커뮤니티(community)의 형성’을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죠.

▼상상력 가득찬 선구자▼

그런 변화의 도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편집자의 역할인 것 같습니다. 베스트셀러를 만들어줄 인기작가 앞에 삼고초려하기보다는 달라진 독자의 요구를 파악하고 그걸 담아낼 신진 필자를 찾는 일, 광고문안을 매력적으로 쓰는 일보다는 책의 완성도를 점검하는 데 더 골몰하는 편집자들이 없다면 출판환경의 변화는 불가능할 테니까요.

판매율 하나에 편집자의 소신과 안목이 내동댕이쳐지는 현실을 모르지 않습니다. 기껏 공들인 좋은 책도 알아봐주는 독자가 없더라는 외로움도 압니다. 그럼에도 편집자가 ‘교정보는 사람, 마케팅을 하는 사람, 작가를 잘 모셔오는 사람’이 아니라 ‘시대를 앞서 독자들의 상상력을 일구어나가는 사람’이라는 꿈을 계속 구체화하지 않는한 영화와 다른 책, 게임보다 재미있는 책, 물과 공기처럼 필요한 책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J주간. 할 수만 있다면 한반도 산천이 아니라 달나라에라도 가서 상상력의 우물을 채워 오세요. ‘내 혼이 깃든 책을 만들고 싶다’는 당신의 소망이 이뤄지길 기대합니다.

<정은령 기자>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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