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득헌의 스포츠 세상]관중을 위해 뛰어라

  • 입력 2000년 7월 17일 18시 39분


“연극을 사랑하는 관객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합니까. 우선 정의부터 필요하겠지요. 통상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마다 한 번은 극장을 찾는 사람들을 우리는 연극매니아로 봅니다. 그런 사람들은 3만명 정도로 여겨집니다. 문제는 그 수가 주는 추세라는 거지요.”

며칠 전 오랜만에 연극 ‘관객’이 돼봤다. 가까운 선배가 초청했으니 자의는 아닌 셈이었다. 또 대학로 안쪽의 공연예술소극장가를 둘러본 것도 처음이었으니 ‘관객’이란 말보다 그냥 ‘객석에 자리했었다’라는 편이 어울릴지 모르겠다. 연극 ‘빨간 트럭’을 본 뒤 각본도 쓰고 배우로도 출연한 소극장 ‘알과 핵’의 윤승중대표를 만난 것은 궁금한 게 많았던 내겐 좋은 일이었다. 그로부터 들은 얘기에는 스포츠를 생각하게 하는 것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3만명이라. 극단적으로 말하면 많은 극장과 극단이 3만명의 가슴을 노린다는 얘기가 아닌가. 3만명의 배가 넘는 관중이 운집한 국가대표 축구팀의 경기나 3만명 이상이 환호하는 프로야구 경기가 눈에 아른거렸다. 이어지는 그의 이야기. “관객이 50명일 때와 100명일 때는 천양지차(天壤之差)이지요. 배우들이 연극에 몰입한다 해도 연기는 차이가 나기 마련입니다. 배우와 관객을 연극의 2대 요소로 꼽는 것은 당연합니다.”

스포츠의 배우인 선수들도 그렇지 않겠는가. 단 한 사람의 관중도 선수의 근육활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게 스포츠 심리학자들의 연구다. 하지만 그 연구에는 선수가 텅 빈 관중석과 만원사례의 관중석에서 받는 영향력 역시 다르다는 결과도 제시된다.

그렇다면 관중이 먼저 선수의 기를 살려주어야 하는가, 아니면 선수가 멋지고 활기찬 플레이로 스포츠팬을 끌어들여야 하는가. 프로축구단 전남의 홈구장인 광양의 평균관중이 가장 많고, 프로야구단 삼성의 이승엽 효과는 각각의 대표적 사례일 수 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상승작용의 관계일 터인데 그래도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관계로 택하라 한다면 나는 나중의 것을 택하겠다.

팬서비스 차원의 경기인 각 종목 올스타전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겠지만 ‘감동이 없는 스포츠’임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외양만 있고 내실이 없는 경기가 일상의 스포츠라면 과연 누가 스포츠에서 투지와 승부욕 같은 끈끈한 삶의 의지를 충족시킬 것이며, 스포츠를 기분전환의 자리로 삼겠는가. “연극은 연극적이라야 산다. 연극이 영화적이 된다면 결국 연극은 설자리를 잃을 것이다”라는 윤씨의 말은 스포츠에도 딱 맞다. 스포츠 팀과 선수들이여, 관중의 무조건적 사랑을 기대하지 말라.

윤득헌<논설위원·이학박사>dhy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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