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푸틴의 북한 방문은 단순히 러―북 관계의 개선 차원만이 아닌 러시아의 신 아시아전략, 즉 아시아지역 국가들과의 협력 확대를 통해 미국을 견제하고 경제 통상 이익을 증대하려는 차원에서 이루어졌다고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세계적 차원에서 볼 때 러시아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하여 미국 등 서방 국가들과 협력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중국과의 관계 강화 등 다극화된 국제질서의 창출을 위하여 노력해 왔다. 그러나 자국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확대 및 유고공습, 인도주의적 개입을 정당화하는 NATO의 신전략개념 채택, 미국의 국가미사일방어체제(NMD) 개발 등이 추진됨에 따라 러시아는 서방 국가들과의 외교 안보 협력에 한계가 있음을 인식하였다. 따라서 러시아는 이에 대응해 중국 인도 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과의 협력 확대를 중시하게 됐고 그 과정에서 미국 일본 중국의 이해 관계가 교차하는 한반도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동북아 차원에서 볼 때 남북정상회담이 성공리에 끝나면서 한반도의 냉전구조 해체와 평화통일에 대한 가능성이 높아졌고 이에 따라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미 중 일 등 주변 강대국들의 외교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러시아는 만약 이러한 한반도 변화의 흐름에 동참하지 않을 경우 동북아지역에 대한 경제 통상 이익은 물론 외교 안보 이익에 심대한 손상을 입을 것이라는 위기의식을 갖게 되었다.
푸틴은 금년 들어 신정부 외교 안보 정책의 기본 원칙과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3가지 문건, 즉 신 국가안보개념(1월), 신 군사독트린(4월), 신 외교정책개념(6월)을 채택했다. 이중 신 외교정책개념은 그 동안 채택된 외교 안보 문건들로서는 처음으로 한반도에 대한 관심을 피력하면서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역내 국가들과 동등한 참여가 보장되어야 하며 남북한에 대한 균형정책이 유지돼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러시아의 남북한에 대한 균형정책의 강화는 그 동안의 한―러 관계 성과에 대한 불만족도 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북한 핵문제, 4자 회담 등 한반도 문제 해결 과정에서 소외되는 등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지역에서 러시아의 현저한 영향력 약화에 대한 대응이라는 성격이 강하다. 푸틴의 북한 방문과 러―북 관계 정상화는 향후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정세가 그동안의 미 일 중 등3각 세력의 경쟁체제에서 러시아가 합류하는 4각 세력의 경쟁체제로 변화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사실 푸틴의 북한 방문은 러시아가 더 이상 남북통일, 평화체제 구축 등 한반도문제의 해결과정에서 국외자로 남아 있지 않을 것임을 대내외에 분명히 알리는 의도가 다분히 숨어 있다. 물론 현 시점에서 러시아의 외교력이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지역에 충분히 발휘될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국경을 맞대고 있으면서 강대국의 잠재력을 충분히 보유하고 있는 러시아가 남북한이 평화통일을 도모해 가는 과정에서 훼방자가 아닌 협력자로 남아 있게 하는 것이 우리 외교의 주요 과제이다.
특히 러시아의 한반도 문제에 대한 개입주의는 푸틴의 북한 방문을 계기로 더욱 강화될 것임이 틀림없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NMD 개발 저지를 위해 북한의 미사일 개발문제를 협의한 것과 같이 러시아의 대북정책은 대한반도 정책 차원이 아닌 보다 광의적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한편으로는 한―러간 실질협력의 확대에 심혈을 기울임은 물론 남북문제와 NMD 등 비한반도 차원의 문제를 격리시키면서 주변 4국과 우호협력 관계를 유지하는 대4강 정책을 펼 필요가 있다.
고재남<외교안보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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